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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김찬삼 여행기<인니서 제8신>|「자카르타」의 관능무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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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자카르타」시에 들어서니 무슨 축제나 향연이 벌어진 것처럼 사람들이 들끓었다.
이 나라의 인구는 1억1천5백만으로서 이 서울에만도 몇백만의 시민이 살고있기 때문이다.「레이스」며 그 밖의 가지가지 얄팍한 천으로 된 독특한 의상을 걸친 멋진 여성들이 한가로이 거니는 모습은 어딘가 사육제의 관능적인「무드」를 자아내었다. 시골과는 달리「블라우스」며「스커트」를 입은 여성들도 꽤 많이 보였으며 교통기관들도 세바퀴 자전거인「페차」보다는「베모」라는 세바퀴 소형자동차들과「택시」가 많았다.
이 도시는 본디 식민도시로서 발전한 곳인데 띄엄띄엄 마천루들이 치솟아 있는가 하면 원주민들이 사는「캄퐁」이란 거리는 잡다하며 마치 미로와도 같이 복잡했다. 이 옛 거리는 「모던·빌딩」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듯 역시 이 나라도 빈부의 차가 심했다. 시내를 흐르는 개울 근처를 걷노라니 많은 사람들이 옷들을 입은채 더러운 물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인도「갠지스」강의 목욕을 방불케 하는 듯. 이 목욕을「만디」라고 하는데「초컬릿」빛깔의 살갗을 한 여성들이 목욕을 하고 쪼르르 젖은 몸으로 냇가에 서서 있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하였다.
옷이 물에 흠뻑 젖어 몸뚱이에 찰싹 달라붙은 그 모습은 그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육체미였다.
이 서울「자카르타」서 목욕하는 것은 풍기상 좋지 않을 뿐 아니라 비위생적이라고 금지 하고는 있으나「샤워」시설이 없는 도민들에겐 둘도 없는 피서방법이니 막지는 못하는 듯. 어쨌든 이곳은 무더워서 이 나라 사람뿐 아니라 외국여행자들도 하루에 몇 번씩은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값싼 숙소에 들면「샤워」를 할 수 없겠기에 당장 더운걸 보아서는「팬츠」바람으로 풍덩 들어가고 싶었으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팬츠」만을 입고 들어가는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남녀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목욕을 한다지만「이슬람」교의 계율이 있어서 여자들 앞에 국부만을 가리고 들어갔다가는 혹 뭇매를 맞을는지 모른다. 그래서 밤에 나와서 마음놓고 할양으로 이곳을 떠나려고 하는데, 어떤 예쁘장한 여성이 목욕을 하려고 겉옷을 벗어 놓고 막 들어가려고 했다. 부리나케「카메라」를 끄집어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그녀는 어떻게 알아차리고는 수줍다는 듯이 텀벙하더니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수줍음은 특히 동양여성들의 미덕이라고 하지만「이슬람」교 나라의 여성들의 수줍음은 더욱 그윽해 보였다. 이「자카르타」가 아무리 발전하고 서구 문화로 자꾸 세련되어 간다지만 수줍음은 없어지지 않지 않을까. 서남「아시아」의「이슬람」교의 풍습처럼「베일」을 쓰는 일은 없다고 하더라도 역시「인도네시아」여성이란「베일」속에 감춰져 있는 듯 했다.
다음날 태평양 제도여행에 필요한「비자」를 얻기 위하여 거리에 나갔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길가에 우리나라 태극기가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상품 전시회」라고 우리나라 말과 「인도네시아」말이 쓰인「플래카드」에 그려진 태극기였다. 낯선 나라에서 조국의 국기를 보는 이 기쁨! 그 전시회장에 들어가니 더욱 기쁘게도 우리나라 옷으로 단장하고 태극선을 고이든 예쁘디예쁜 우리 나라의 여자 안내원이 방실방실 웃으며 서 있었다.
쏜살같이 그녀 앞에 달려가서『나는 한국사람인데 우리나라 아가씨를 이런 낮선 고장에서 만나니 정말 기쁩니다』고 말을 건네었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귀머거리가 아닐텐데 이상도 하다고 생각하며 이번엔 영어로 다시 물으니 그제서야 입을 방싯 열고『전 중국사람이예요』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그녀는 이 나라에서 나서 자랐다는 몇마디 말을 덧붙였다.
이 중국여자는 희멀끔한「꾸냥」인데 자기 나라 옷보다도 우리의 한복이 더 어울리는 듯했다. 우리나라 여자 옷이 어느 나라 옷보다도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분명 의상의 여왕이 아닐까 했다. 그리고 장내에서는 우리의 민요「아리랑」이며「도라지 타령」들이 울려 퍼졌다. 향수가 불현듯 솟구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여기구경은「인도네시아」나 딴 나라 사람들은 전시품들보다는 이 여자안내원이 걸친 한복과 서정적인 우리의 민요에 더 넋을 팔고 있는 듯 했다. 전시품들은 면직물·화학섬유 이외에는 그리 자랑할 만한 것이 없으나 보람있다고 느꼈다. 어쨌든 손님들을 더욱 감동시킨 것은 틀림없이 한복과 민요였다. 구경온 사람들도 한결같이 한복을 절찬하는 것으로 보아「인도네시아」뿐 아니라 한복을 전세계에 널리 선전만 한다면 우리나라가 매우 좋은 인상을 받을 것이다.
어쨌든 선의 예술의 극치라 할 한복의 아름다움을「인도네시아」에서 재발견했다. 이 전시장에서 나올 때 그 중국여자 안내원은 정녕 가냘픈 미소를 지으며 태극선을 쥔 손을 흔들며 환송해 주었다. 동양스러운 여성적인 것 만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하면 나의 역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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