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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끄고 부채 바람 그리고 모시 바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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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호 24면

덥다. 전력 대란에 에어컨도 맘 놓고 쓰질 못하니 마음이 더 덥다. 이럴 땐 손짓 몇 번으로 시원함을 얻을 수 있는 부채가 최고다. 순수 우리말인 부채는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의 ‘부’자와 가는 대나무 또는 도구라는 뜻인 ‘채’자로 이루어졌다. 특히 고려의 부채는 고려선(高麗扇)이라 불리며 중국에서도 커다란 인기를 누렸다. 시인 소동파(1037~1101)는 “고려의 백송선은 펴면 한 척이고 접으면 손가락 두 개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며 그 우수성을 인정한 바 있다.

부채 전시 2제: 경기도박물관 ‘5색色 바람이 분다’(7월 26일~11월 3일), 서울 홍지동 쉼 박물관 특별전 ‘모시 바람 이야기’(8월 15~31일)

부채는 종이와 대나무의 예술이다. 섬세한 작업과정을 거쳐야 하는 정교한 공예품이었기에 임금께 진상하거나 외국 사신에게 주는 선물 혹은 임금이 신하에게 특별히 하사하는 물건으로 사용됐다. 특히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쓸 수 있어 예술적 부가가치도 높일 수 있었다. 마침 박물관 두 곳에서 독특한 부채 전시를 열고 있다.

삼국시대 깃털부채부터 현대미술 작품까지
우선 경기도박물관(관장 이원복)이 마련한 ‘5색色 바람이 분다’는 부채에 담긴 의미를 되짚어 보면서 부채의 역사성과 예술성을 조망하는 전시다. 옛 바람(古風), 어진 바람(仁風), 맑은 바람(淸風), 아름다운 바람(美風), 새로운 바람(新風)의 다섯 색깔 섹션으로 구성했다. 청곡부채전시관(관장 금복현)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행사에서는 3점의 보물, 5점의 지정문화재를 포함해 전통과 현대 부채, 부채 관련 장식품 등 총 122건의 187점을 볼 수 있다. ‘행복무대의 축배’(한승민), i’ll be back(이지영), ‘채무’(김태서), ‘여름 특히’(송유정) 등 현대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모았다.

‘옛 바람’에서는 부채의 역사와 정치성을 다룬다. 창원의 다호리 출토 부채,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이는 부채, 후백제왕 견훤이 왕건의 고려 건국 소식을 듣고 보낸 부채는 모두 깃털부채, 이름하여 공작선(孔雀扇)이다. 이 부채들은 세상을 교화하기 위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조선시대에는 여름이 다가오는 단오가 되면 지역마다 부채를 만들어 진상했고 공조에서도 부채를 만들었다. 임금은 이를 신하에게 하사했다. 민생에 더욱 힘쓰라는 분부가 담겨 있었다. 부챗살이 많을수록 가치가 높았다.

사대부들이 접는 부채를 썼다면 민간에서는 주로 단선(團扇)이 사용됐다. 부채는 햇볕을 가리고, 비를 막고,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며, 벌레를 쫓거나 불을 피울 때에도 쓰였다. 혼례나 제례에도 의례용장식용으로도 활용됐다. 판소리에서 긴장감과 흥을 고조시키는 것도 부채였다. 이렇게 다양한 부채의 기능을 8덕선(八德扇)이라 부른다.

전시 외에도 용인대 뮤지컬연극학과와 공동으로 개발한 어린이 연극 ‘임금님이 주신 부채’도 8월 25일까지 볼 수 있다. 매주 목·토·일요일 공연. 문의 031-288-5400.

모시 치마저고리가 일으키는 바람
서울 홍지동 쉼 박물관(이사장 박기옥)의 ‘모시 바람 이야기’는 지난해 ‘보자기와 바람’을 잇는 여름 특별전시다. 지난해엔 국내 작가 4명, 외국 작가 2명이 만든 조각보를 중심으로 꾸렸다면 올해는 박기옥 이사장이 직접 만든 부채 작품 50여 점을 볼 수 있다.

무지갯빛 일곱 색깔 선명한 복숭아 모양의 단선 부채 혹은 동그란 색동 부채에 박 이사장이 직접 구한 한산 모시로 모양낸 치마저고리를 한 구석에 붙였다. 구름 위를 나는 학을 손자수로 박아냈다. 부채 자루에 장식용 끈목으로 매다는 선추(扇錘)로는 전통 매듭과 골무를 사용했다. 모두 한국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다.

박 이사장은 “무명과 모시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전통 옷감으로 조선시대 여인들은 옷감을 사용하고 남은 조각을 모아 조각보를 만드는 근검절약의 미덕을 보였다”며 “여름 옷감인 모시가 주는 시원한 감촉과 한국적인 여백의 미가 주는 시원함을 이번 부채전에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의 02-396-9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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