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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의 ‘일생’ 내내 단계별로 핵심요소 챙겨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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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호 23면

요즘 뉴욕 주식시장에서 연일 화제가 되는 ‘핫(hot)’한 기업이 하나 있다.

BCG가 들려주는 ‘경영의 한 수’ ③ 전기차 사례로 본 ‘기술 투자의 수익성 관리’

전기차 제조업체인 테슬라 모터스다. 이 회사 최고 경영자인 앨런 머스크부터가 흥미로운 인물이다. ‘인터넷 결제 대행사인 페이팔(PayPal)의 공동 창업자’ ‘실리콘 밸리의 젊은 억만장자’ ‘세계 유일의 민간 우주발사체 기업 스페이스X의 오너’ 등으로 알려진 그는 영화 ‘아이언 맨’ 시리즈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하다.

앨런 머스크가 2003년 창업한 테슬라는 10년 연속 적자를 내는 회사였다. 그러다 올 1분기 처음으로 분기별 흑자를 기록했다. 대사건이었다. 미국에서 신생 자동차 업체가 창업 10년 이내에 흑자를 내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나스닥 시장에서 테슬라의 주가는 올 들어서만 300% 올랐다.

벤처의 나라 이스라엘에도 테슬라 못지않게 주목받던 전기차 관련 회사가 있었다. 베터 플레이스라는 기업이다. 이 회사 창업자 샤이 아가시 역시 벤처 신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24세에 창업한 벤처 ‘톱티어 소프트웨어’를 독일의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 SAP에 팔아 청년 갑부가 됐다. 2005년 아가시는 배터리를 바꿔 끼우는 전기 자동차를 고안했다. 기존 전기차들은 배터리 충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사업 모델은 충전된 배터리의 교환 서비스로 정했다. 전기차 가격에서 배터리 가격만큼을 떼낸 뒤, 배터리는 교환 서비스를 포함해 별도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이스라엘 정부도 그 아이디어에 주목했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까지 후원자로 나서 자신의 인맥을 동원했고, 1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이 모였다. 하지만 전기차는 생각만큼 보급되지 않았고, 배터리 교환 서비스 사업도 당연히 장사가 되지 않았다. 결국 누적된 적자를 이기지 못한 베터 플레이스는 지난 5월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최근 캐나다 선라이즈 그룹에 싼값에 팔렸다.
 
미래 대비 투자도 적정 수준서 관리해야
무엇이 테슬라의 성공(이제 막 시작이기는 하지만)과 베터 플레이스의 실패를 갈랐을까? 답은 기술투자에 대한 수익성 관리다.

기술투자에 들어간 현금 흐름의 수익성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리려면, 사업 모델을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해 나가는 게 관건이다.

제품 개발 단계뿐 아니라 생산부터 마케팅, 시장 출시 이후에 이르기까지 제품의 ‘일생’ 전체를 놓고 수익성 관점에서 관리해야 한다. 어떻게? 단계마다 핵심 요소를 챙기면 된다. 예컨대 아이디어나 제품 포트폴리오를 비롯해 목표 판매량 도달 시간, 시장 점유율, 제품의 수명 주기, R&D(연구개발) 효과, 마케팅 효과 등이 바로 그런 요소들이다. 이 같은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하는 ‘ITC’(innovation to cash)라는 프레임 워크까지 왔다.

베터 플레이스는 초기 단계인 ‘제품 포트폴리오’부터 문제가 있었다. 충전 대신 배터리를 바꿔 끼운다는 그들의 사업 모델에 맞춰 교환형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모델을 내놓은 자동차 회사는 전 세계에서 르노 단 하나였다. 이스라엘은 연간 20만 대 안팎의 신차가 팔리는 시장이다. 중국 약 1900만 대, 미국 약 1500만 대에 비하면 매우 작은 시장이다.

이스라엘의 자동차 구매자 중 과연 몇 명이나 전기차를 선택할 것이며, 그중에서도 르노 차를 고를 확률은 얼마나 될까. 타깃 시장을 좁혀놓은 결과는 참담했다. 3년간 르노가 만든 교환형 배터리 전기차 모델 ‘플루언스’는 고작 750대 팔리는 데 그쳤다. 이스라엘에서 시작해 유럽과 미국 등으로 시장을 확장하려던 계획은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투자자본 수익률(ROI·수익/투자금)을 높이려면 분자를 키우는 것도 좋지만, 분모를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베터 플레이스는 사업 모델상 초기에 거액의 투자가 이뤄졌다. 배터리 교환 서비스를 위해 곳곳에 스테이션을 세워야 했다. 한 곳당 50만 달러, 총 2억5000만 달러의 투자가 집행됐다.

반면 테슬라는 차 시장이 넓은 미국에서 출발했다. 그중에서도 소비자들이 전기차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이고 정부 지원도 많은 캘리포니아주에서 사업을 먼저 시작했다. 첫 제품은 2인용 스포츠카인 ‘로드스터’와 ‘모델S’. 로드스터는 페라리나 포르셰와 견줄 만한 고가의 스포츠카다. 모델 S는 BMW나 벤츠 구매층이 관심을 가질 법한 고급 세단이다. 테슬라의 초기 ‘제품 포트폴리오’는 이렇게 기존 차 시장의 분류 체계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개발 이후의 단계에서는 소비자 시각으로 봐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미리 예상한 뒤 대안을 제시했다. 1회 충전으로 갈 수 있는 거리가 짧다는 불만에 대해선 ‘수퍼 차저’라는 고속 충전 스테이션 도입 계획으로 대처했다. 중고차로 되팔 때 가격 하락에 대한 우려는 3년간 보유하면 같은 연식 모델인 ‘벤츠 S-Class’ 가격으로 되사주는 ‘바이 백(buy back)’ 프로그램으로 대응했다.

‘수퍼 차저’는 한 곳당 25만 달러씩, 총 2500만 달러를 들여 미 서부 지역에 고속 충전소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베터 플레이스가 이스라엘에 배터리 교환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쓴 2억5000만 달러의 10분의 1 밖에 안 되는 금액이다. 무엇보다 두 회사의 결정적 차이는 사업 모델에 있었다. 베터 플레이스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전기차 보급률이 얼마나 올라가느냐에 달려 있었다.

반면 틈새 시장을 공략한 테슬라는 일정 수준의 시장 점유율만 확보해도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이처럼 다른 사업 모델은 결국 어느 쪽의 투자 수익이 높은가 하는 문제에서 결판이 났다.
 
변화의 조짐 조기 포착하는 시스템 만들어야
신기술 사업에 진출하려면 수많은 불확실성 속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상대는 시장이나 전략과 관련된 불확실성이다. 환율이나 유가, 경제성장률 같은 거시경제 변수는 어느 정도 예측하거나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고객의 입맛 변화나 경쟁자의 출현, 기술 혁신, 비즈니스 모델 혁신 같은 전략적 변수는 거의 예측이 불가능하다. 어차피 알 수 없다면, 이런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능력을 키우면 된다.

핵심적인 위험 요인이 무엇인지 규정하고 나서 그것을 감지할 수 있는 지표를 설정하는 게 그 시작이다. 길목마다 이정표를 세워 의미 있는 변화의 조짐을 포착해 적기에 사업계획에 반영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전기차 시장 성숙을 지나치게 낙관했던 베터 플레이스라면 전기차 보급률이 지표가 될 수 있다. 변화를 감지하는 신호로는 ▶닛산의 전기차 모델 ‘리프’나 GM의 ‘볼트’ 판매량 추이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지원 속도 ▶전력회사 등 전기차 충전 인프라와 연관된 이해 관계자의 투자정책 등을 꼽을 수 있다.
 
필요하면 투자 줄이는 지혜도 필요
시장의 신호를 감지한 뒤엔 기술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하는지, 제품 포트폴리오를 바꿔야 하는지, 마케팅 대상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만약 새로운 시장이 지나치게 느린 속도로 열리고 있다고 판단됐다면, 때론 관련 사업을 매각하는 결단까지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신기술 사업에 대한 투자는 요즘 거의 모든 한국 기업에도 커다란 고민거리다. 태양광이나 전기차 부품 같은 신기술 사업에 선제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했지만 시장이 기대만큼 성숙되지 않아 고전하는 회사가 많다.
지금이라도 신사업에 뛰어들어야 하는지, 너무 늦진 않았는지 갈피를 못 잡기도 한다. 과거엔 ‘패스트 팔로어’ 전략만 따라 하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이제는 ‘이노베이터’로 거듭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라 더욱 고민이 깊다.

미래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예측 불가능하다. 하지만 등대가 있다면 어두운 바다를 잘 헤쳐나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신기술의 영역에 나서려는 기업에게는 수익률 극대화의 관점에서 투자를 관리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장과 전략 상황을 포착하며, 이를 적시에 사업계획에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등대’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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