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갈수록 참혹한 남아의 인종차별|침실까지 갈라놓은『흑』·『백』의 철조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광적인 인종분리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남아연방의 백인독재 정권하에서 피부색깔을 달리하는 무수한 변인들이 모진 박해를 받고 있다. 반인간·반문명의「파시스트」적 압제는 신문과 언론은 물론, 공원「벤치」와 교회의 좌석과 연인들의 침실까지 다「흑」과「백」의 철조망으로 격리시켜 놓았다. <슈테른지=본사독점취재>
3백만의 백인이 1천8백만의 유색인을 학대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수단만해도 l960년의 흑인대량학살에서 소위「반부도덕법」의 제정과 전수상「배어보르트」가 교회측과 체결한「협정」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다.「반부도덕법」이란 바로 혼종 결혼이나 동침을 처벌하는 법이고「협정」이란「혼종 주장자는 공산당」이라고 못박은 계율이다.
백인이 혹시 교통사고로 다 죽어 가는데도 흑인전용「앰뷸런스」로 실어가서는 안되고 교회의 흑인좌석에서 예배를 보는 백인은 감옥으로 직행해야 하는데가 이 나라다.
「케네디」의 자유주의는 불온시되고「뉴질랜드」축구「팀」엔「마오리」족 출신선수가 끼여 있어 입국을 불허하는 나라가 여기다.
그러나 국경과 악법을 초월하는게 바로 사랑이다. 그 사랑의 진문을 몇개 들어보자. l966년 독일계 청년「요아킴·소베」와 유색인「미리암」양은 동침하다가 이웃 사람의 밀고로 체포되었다.「미리아」의 친구들이 판·검사를 매수해서『성교는 안한 것』으로 치고 석방했다.
1969년엔 백인계「앤토니·블래킹」교수가 인도계여의사「데사이」양과 동침하는 광경을창문으로 들여다보던 당국은 이들을 체포, 투옥했다. 그 다음 백미는 독일계「뤼디거·크렙스」(22)청년과 인도계 여인「베로니카」(24)와의 사연이다. 이들은 1968년「요하네스부르크」근처「이스트런던」의 한「호텔」에서 만났다.「크렙스」는 요리사「베로니카」는「웨이트리스」였다. 이들은 이내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베로니카」는 외증조모가 인도계라는 것이다. 둘은 주위사람과 관청의 눈을 피해가며 몰래「데이트」를 하면서도 늘 공포에 사로잡혀있었다.「베로니카」는 임신을 해 딸「유타」를 낳았다. 이들은 7년징역을 받을 짓을 한 것이다.
같은 형제라도 관청에 잘 못보이면 흑·백·황으로 갈려서 낙인찍히는 이 나라를 그들은 탈출하기로 했다. 둘은 아기를 데리고 등산복 차림으로「모잠비크」로 도망가려고 국경을 넘었다. 그러나 그곳 관청은 이 둘을 다시 남아당국의 손에 넘겼다.
둘은 각각 비좁은 감방에서 다른 수감자와 더불어 지옥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맨바닥에서「포트」도 없이 접시를 핥는 식사와 질식할 악취.
다행히「베를린」에서 소식을 들은「크렙스」의 아버지가 돈 8만원을 내고 이들을 보석, 귀국시켰다. 그러나 그것으로 악몽은 가셨을까. 왜냐하면 아직도『「유럽」기독교문명의 초소이며 국제 공산주의에 저항하는 서구적 자유의 투사』임을 가장하면서도 그「자유」를 무참하게 짓밟고 있는 남아의 가두엔 지옥의 악몽이 밑바닥으로 흐르고 있으니까 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