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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촌 화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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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비가 없고, 바람이 많은 이상건조가 벌써 달포씩이나 계속되고있다.
경찰은 지난 11일부터 『산불비상계엄령』을 내린바 있거니와 그 다음날인 지난 일요일에는 전국에서 34건, 서울에서 16건의 산불이 일어나 식목일의 거창한 행사에 이은 산불계엄령을 무색케 했다. 산불의 원인은 그 대부분이 상춘객·등산객들이 버린 담뱃불, 모닥불, 어린이들의 불장난 등 부주의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국민 각자가 공중도덕심을 가지고 조금만 더 조심을 한다면 산불과 같은 재난은 거의 면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또 지난 12일에는 서울 용두동 청계천 위에서 큰불이 일어나 5백32동의 판잣집을 삽시간에 전소케 하고 7백50가구 4천2백여명의 이재민을 냈다. 그리고 이 화재의 경우에도 그 원인을 단순한 건조한 봄바람이나 주민의 부주의만 탓할 수 없는 심각한 사회문제의 단층을 드러내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화재가 발생하자 경찰에서는 소방차 40대, 소방관 l백50명, 기동경찰 2백50명을 풀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진화작업에 나섰으나 소방도로가 전혀 없어 현장 접근이 불가능하였을 뿐 아니라 골목길로 몰려나오는 대피주민들 때문에 소방호스를 불길에 대보지도 못하고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과밀도시화 해가고 있는 서울시가지에 아직도 소방차의 진입도로 조차 뚫리지 않은 판잣집 밀집부락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물론 부끄러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 나라 도시행정의 암적 존재가 된지 이미 오래인 이 판자촌철거를 에워싸고 당국이 겪어온 고충을 우리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금년 들어서 만도 거의 같은 지역에서 연거푸 발생한 청계천변 판자촌 대화사건의 교훈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 우범적 화재위험구역에 대한 소방대책 및 그 조속한 철거대책은 이 이상의 지체를 불허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이 이번 용두동화재에 있어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불길을 피해 나오던 병자가 골목길 안에서 대피주민들한테 짓밟혀죽었다는 사실이다. 판잣집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베니어판자와 루핑 지붕 등으로 그야말로 불타기 쉬운 구조물인 것이므로 한번 불이 나면 그 불길이 번지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대피주민들이 이성을 잃고 저만 살려고 서로 앞을 다투다가 이른바 스탬피드 현상을 일으켜 많은 사람이 서로 밟고 짓밟히는 참사를 빌어낼 수 있다는 것을 평소부터 인식하고, 사고 발생 시에는 무엇보다도 이에 대비한 인명보호대책에 만전을 기했어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위험한 상황 속에서일수록 시민의 침착한 태도, 협동, 박애정신 등을 통해 재해를 최소한도로 줄이는 훈련이 특히 판자촌주민을 대상으로 실시 되야 할 필요성이 절실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문화는 자연의 재난을 인간의 이성적 노력으로 극복해낸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 진 것임을 생각할 때, 20세기 과학시대인 오늘의 한국에서 그 숱한 위험성이 뻔히 내다보이는 판자촌 철거대책을 서울시가 언제까지나 매듭짓지 못한다면 이것은 벌써 현대행정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화재로 화를 입은 이재민 구호를 위해 당국자뿐만 아니라 시민의 협조가 있기를 요청하면서 우리는 서울을 비롯한 우리 나라 도시에서 다시는 이러한 참변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시행정의 획기적 쇄신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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