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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실종 시대|사회부의 눈에 비친 그 실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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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아폴로」 시대엔 「아폴로」적 인격이라야 시세에 맞을 거라 한다. 「메커니즘」의 분류에 말려 「휴머니즘」은 변경으로 떼 밀리고 있다. 거리에 나서면 그 숱한 차량의 홍수, 기계문명의 이기들이 뿜어 놓는 아유산 「개스」와 넌덜머리나는 소음, 인격을 들먹이기 전에 인간의 값어치가 미미해진다. 서울 시청 앞에서 어느 기업체장의 빈 「세단」이 「트럭」과 부딪쳐 매끄로운 승용차 「범퍼」가 긁혔다. 겁먹은 운전사가 공중전화로 달려가 사장「님」을 불렀다. 사장, 『뭐라고? 차는 괜찮은가?』운전사가 안전한가를 묻기 전에 「70년형」의 「범퍼」가 성한가 부터 물었다. 그 사장에게서 고매한 인격을 바라기전에 「차량」이 「인격」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세태-.
그같은 사장일수록 「골프」장에선 「캐디」 눈을 속여 「해자드」(장애물) 속에 묻힌 「볼」을 살짝 꺼내놓고 칠지도 모른다.
개도 없는 집 대문에 「맹견주의」라고 써 붙였다. 외국에선 개 음식을 따로 팔지만 우리나라의 식모들이 먹는 음식은 부잣집 개만도 못하다는 얘기다. 식모가 없어지면 찾지 않아도 심견 광고를 우리는 흔히 본다.
하지만 요즘 식모들은 행주치마를 반납하고 가발공장의 「미스·김」으로 빠져나가고 또는 새로운 「테크니션」으로 간호술을 배워 서독 행 여권을 신청하는 새로운 「인격」으로 변해가는 판-.

<금권이 인격을 지배>
물량 위주의 사회에서 흔히 돈과 권력은 인격을 굴복시킨다. 세상을 어수선하게 했던 정인숙양 사건만 해도 「콜걸」인 여동생이 던져 주는 해웃값으로 생활해야 하는 오빠, 그 오빠가 「핸들」을 잡은 자동차의 뒷자리에서 교태를 팔아 「달러」와 「엔」(원)을 부지런히 챙겨 넣어야 하는 오누이의 질서 속에서 인격은 포복 졸도를 했을 것이다. 인격자는 돈을 돌보지 말아야 된다고 배워왔다. 선비는 쌀뒤주가 바닥나도 오롯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위를 고르는데 인격을 들추면 남들이 비웃는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복합 사회에서 조직 속의 개인이 마멸될 순 없다. 진정한 의미의 개인주의는 탓할 게 못된다. 다만 나와 너-. 공동체 속의 염치, 도의, 체면이 지켜진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가짜 박사 소동은 인격을 짓 깔면서 인격을 보완하려던 사뭇 역설적인 사건이었다. 권위의 상징(?)인 박사 학위를 돈으로 사서 인격을 연장하다가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졌다.
요즘 중학교엔 우열반이 갈라져 있다. 우반엔 머리 좋은 아이들만, 열반에선 아둔한 학생들만이 배운다. 교육적인 진보를 위해선 그 제도가 썩 좋다고 평가하겠지만 학업의 우열을 가리다가 인격 형성이나 도의 교육이 뒤틀릴 염려가 있다. 동심에까지 깊은 「콤플렉스」를 새겨줄 필요가 있을까. 도의 교육은 도의 선생만의 전유물인 것이 오늘의 현실-.
도의교사가 도학자는 아닌 이상 다른 교사들은 학생들과 거친 대화를 나누고 (강의 시간에 「섹스」 얘기도 곁들여야 인기가 있다는 실례도 있다) 교육의 팽창 탓이겠지만 스승과 학생의 대화는 끊기고 「강의내용의 교수」만이 남은 학교에서 참다운 인격은 부딪치지 못한다.

<모욕 받은 동심의 탈선>
서울 효제 국민학교에서 있었던 일-.
학교 육성회비 납입이 극빈 자녀들에겐 면제 됐다.
그러나 한 학부형은 교사를 찾아가 육성회비 1백 50원을 내면서『내 아들도 인격이 있는 것』라고. 아들을 구김살 없이 키우려는 부정이었다. 미국에선 「버스」를 탈 때 어머니가 어린애 대신 「코인」(동전)을 통에 넣는 법이 없다. 꼭 어린이에게 동전을 들려줘 운전사 보는 앞에서 동전을 넣도록 한다. 경기도 파주군 광탄 보육원에 있던 한 모범 아동이 평소엔 원장으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다가도 물건이 없어지면 지목을 받아 왔다. 그러던 어느날 현금 2만원이 없어졌다. 그 모범아의 범행이었다. 하지만 그 소년은 서울 남산의 한 바윗돌 밑에 편지와 함께 그 돈을 고스란히 갖다 놨다.
편지 사연은 『물건이 없어 졌을 때만 내게 혐의를 두는 세상이 괘심 했다 』는 것-.항상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인격모독」에 민감하기 마련. 이런 예도 있다. 8년 복역을 마친 사형수를 자기 집에 데리고 있던 판사가 방학 때 돌아온 그 또래의 아들과 어울리게 했다. 판사의 부인은 사람을 죽인 아이와 아들이 함께 노는 것을 볼 수 없어 방학동안만 하숙을 구해주고 나가 있도록 했다. 그러나 강한 「콤플렉스」에 젖어있는 사형수는 끝내 그 집을 뛰쳐나가 재범을 저질렀다. 서울지검의 경우 검사 한 사람이 한달에 처리해 내는 사건은 보통 3백건. 하루 10건 꼴이다. 구속 품의 한 장만 붙으면 사람이 갇히고 풀린다.
그 같은 사건 처리의 기계주의 속에 인격에 앞서 인권이 침해 안 받는다고 장담 할 수 없다.

<권력 업고 판치는 비행>
경찰 대화법이란 것이 새로 마련 됐다. 그에 따르면 주정뱅이의 인격은 다음과 같이 우대를 받는다.
형사 『약주가 과하셨군요.』 주정꾼『야 내가 누군 줄 알고 까불어.』
형사 『아 그렇게 지체 높으신 분이 이러시면 되겠습니까.』
범죄 혐의자의 인권이 곧잘 짓밟히는 곳이 경찰서에서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약한 말단 경찰관에게 대하는 「모럴」은 영점인 수가 많다. 인권과 「에티켓」-.
그 중간에 자리잡은 보다 깊고 은근한 인간의 체취가 인격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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