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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 맴도는 세 강력 사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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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강변 3로 여인 피살사건·JAL여객기 납치사건 등 큰 사건에 내외의 이목이 쏠리거나 수사력이 편중되는 사이 을지로「7가 집」두 여인 살해사건·황금당 점원 피살사건·미도파 백화점 폭발기도 사건 등 엽기적인 강력 사건이 계속 원점에서 맴돌고 있거나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더우기 한때 일반에 큰 충격을 안겨준 정인숙양(26)사건도 그 동안 유일한 물증인 권총을 끝내 찾지 못하고 오빠 정종욱씨만 검찰에 송치, 공소유지 여부에 의문을 안은 채 일반의 시선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이 같은 수사 경찰의 무능은 일단 강력범들에 대해 완전범죄의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수사 전문가들에 의해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3월 12일 서울 을지로의 주점「7가 집」에서 두 여인이 피살당한 사건은 사건발생 28일째로 접어든 8일 현재 수사범위가 좁아지기는커녕 수사 초점 마저 흐려진 상태. 경찰은 그 동안 1백 20여명에 대해 용의자로 지목, 하나 하나 따져나가는 투망 수사를 폈으나 모두가「알리바이」가 성립되는 등 혐의가 풀려 허탕을 쳤다.
이 같은 수사의 실패는 수사 ABC인 현장보존을 제대로 하지 못한데서 부터 비롯됐다. 애당초 경찰은 주인 서명률씨(47)의 신고로 초동수사에 나섰으나 수사 경찰이 구둣발로 현장을 짓밟고 시체 검안 전에 멋대로 시체를 주물렀는가 하면 창문을 열어 젖힘으로써 과학수사의 기초자료를 스스로 잃은 결과를 빚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자살·피살 여부의 방향도 못 잡아 범인의 지문·족적·유류품 등을 모두 채취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네들이 열어 젖혀놓은 창문을 통해 범인이 달아났을 것이고 변태 성욕자의 범행일 것이라는 막연한 추리를 했다.
게다가 두 여인의 죽음을 가까운 주변 남자에 의한 단순 치정사건으로 성급하게 심증을 굳혀 다각 수사를 벌이지 못한 점도 흠이 되었다. 죽은 손모양(19)을 임신토록 한 후 피해 다니던 직공 이모씨(30), 술집에서 밤늦게 술 마시던 박모씨(32)를 거의 진범으로 장담하고 뒤쫓다 「알리바이」가 성립되자 동네 불량배 등을 닥치는 대로 연행, 어거지 수사를 벌였다.
또 경찰은 사건 당일 변소 속에서 여자 구두 한 짝을 발견하고 엉뚱하게도 구두 전문 절도범을 무더기로 족쳤으나 허탕쳤고 나중에야 피해자의 구두임을 알아내는 등 웃음마저 자아냈다.
이에 반해 서울 남대문로 보석상 황금당 사건은 현장의 철저한 보존에서 얻은 갖가지 단서를 갖고도 수사 기술상의 문제로 원점을 맴도는 대표적인 사건. 3월 17일 종업원 유한룡씨(25)가 피살되자 경찰은 외부인사의 접근을 완전히 통제, 피에 엉킨 2개의 머리카락, 범인의 혈액형이 O형, 왼쪽 손바닥 등의 지문, 범인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 굵은 흰 면장갑 등 단서를 얻었고 거기에다 검은 신사복 상하,「시티즌」시계 1개, 소형「소니·라디오」등 장물마저 곁들여있어 현장에 나온 남대문 경찰서 번영선 형사과장은『이런 사건쯤이면 오늘 중으로 해결한다』고 장담할 정도였다.
그러나 경찰은 범인의 인상착의도 『노란 목이 긴「샤쓰」에 더벅머리를 한 27, 28세쯤 된 남자』로 드러났지만 사건 발생 3주일 째 접어들어도 실마리조차 풀지 못하고 있다.
다급해진 경찰은 나중에야 금고에서 지문을 채취 강도 살인에 대한 수사를 벌여 유씨의 친구 서모씨(25) 박모씨(26) 등 7명의 용의자를 쫓고 있으나 실패만 거듭했다. 그것이 실패하자 남대문 시장 주변의 우범분자, 전과자 등 4백 90여명을 연행, 투망식 수사를 벌이고 있다.
또한 미도파 백화점 폭발물 사건은 사건발생 당초부터 경찰의『쉬쉬』수사에서 발생 10일째 접어들어도 수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미궁을 헤매고 있다. 사건의 성격조차 뚜렷하게 끄집어 내지 못한채 「몽타지」사진을 만들어 배부했을 뿐 아직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단서는 많았다. 출처가 1백개 뿐인「이탈리아」제 자명종 시계, 포장지, 봉투 등에 범인의 인상착의까지 선명히 드러난 사건이 단서조차 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수사의 어려움보다 기피하는데 큰 원인이 있지나않나 하고 의아심마저 풍겨주고 있다.
시계 출처 수사에서 경찰은 서울 영등포구 신사동 소재 합동제약에서 61년 거래선인 목포 백제약국에 보낸 1백개 중의 한 개인 점을 캐내고서도 주춤하고 있으며 폭발물을 싼 포장지와 그 속의 봉투 출처 수사도 C상선의 것으로 어느 정도 수사 범위를 좁혔지만 그 이상의 수사에는 손을 못 대고 있다.
경찰은 다만 ⓛ단순한 미도파 상인 조합원 사이의 원한에서 빚어진 사건 ②간첩 또는 불순분자의 소행 등으로 대변해서 수사 방향을 잡은 채 범인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실정이다.

<백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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