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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충북 강사 18%가 무자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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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부모가 돌보지 못하는 초등 1~3학년 나홀로 아동(32만7300명, 여성가족부 추정) 중 15만9248명은 돌봄교실이, 3만8030명은 지역아동센터가 맡고 있다. 그나마 공적 돌봄을 받고 있어 만족도가 높을 것 같은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그중엔 부모가 아이를 선뜻 맡기고 싶어하지 않는 곳이 많다.

돌봄교실을 주저하는 대표적인 이유가 돌봄강사의 질이다. 강원도 철원의 A초등학교 돌봄교실에는 1학년 24명이 다닌다. 돌봄강사는 40대 초반의 B씨. 그는 민간에서 발급하는 종이접기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지만 교육이나 보육 관련 자격은 없다. 그렇다 보니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 이 학교 돌봄교실 담당 교사는 “아이들을 잘 돌보기는 하지만 덧셈·뺄셈이나 한글 쓰기 문제를 내고 반복해서 쓰게 한다. 틀려도 지도하지 않는다”며 “자격증이 없는 사람한테 섬세하게 지도해달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강사는 관할 지역교육청이 선발해서 보내줬다. 교육부의 돌봄교실 지침은 유치원·초중등학교 교사 또는 보육교사 2급 이상의 자격증 소지자를 강사로 채용하도록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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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4월 현재 전국 돌봄교실 강사 7824명 중 550명(7%)이 무자격자다. 무자격자 비율은 충북(19.2%), 강원(17.5%) 지역이 높다. 서울·광주 등은 무자격자가 거의 없다. 강원도교육청 관계자는 “하루 4~5시간 근무에 월 80만원 받고 산골까지 올 사람이 있겠느냐. 어쩔 수 없이 기준 미달자를 채용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충남 연기군의 한 초등학교도 1순위로 교사(관련 자격 소지자), 2순위로 ‘고졸 이상 학력으로 교육 관련 경험자’를 뽑는 공고를 냈다.

 보육 위주의 단조로운 프로그램을 싫어하는 학부모도 있다. 초등 2학년 쌍둥이 아들을 둔 직장맘 강해정(41·서울 송파구)씨는 지난해 돌봄교실을 보내다 올해는 집 근처 사회복지관으로 바꿨다. 강씨는 “방학이 되면 오전 시간이 비는데 애가 다니던 돌봄교실은 오전만 이용하는 게 가능하지 않았고, 특히 피아노·태권도 등의 프로그램이 없었다”며 “애들이 답답하고 지루해 안 가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지난달 16일 서울 은평구 한 놀이터에서 만난 1학년 학부모는 “숙제나 시키면서 엄마 올 때까지 학교에 잡아두고 있으니 방치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했다. 대전 유성구의 한 돌봄강사는 “매뉴얼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한다”면서 “엄마들은 학원 역할을 기대하지만 안전하게 지도하기도 버겁다”고 말했다.

 학교당 평균 1.25개의 교실(20명 내외)만 운영하다 보니 저소득층 아동에게 우선권이 간다. 서울 등지의 아파트 밀집 지역에는 빈자리가 거의 없다. 다니는 아이가 전학 가야 자리가 난다고 한다. 본지 취재팀이 서울 지역 초등학교 13곳의 돌봄교실을 취재한 결과, 한 곳에만 빈자리가 있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돌봄교실은 대기자가 19명(정원 25명)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산층 맞벌이가정의 자녀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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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지방의 경우 정원을 채우기 힘든 데가 많다. 그래서 전북 정읍시 수곡·칠보·백암초등학교 등 4개 학교는 올 1월부터 칠보면 태산선비문학관을 빌려 연합돌봄교실 ‘칠보학당’을 열었다. 로봇과학·종합체육·고전독서·생활과학 등 특별 프로그램이 알차다.

 지역아동센터 사정은 더 안 좋다. 12일 오전 서울 남부 지역의 한 지역아동센터를 찾았다. 사무실 뒤쪽 6.6㎡(2평) 남짓한 주방은 바람이 안 통하고 햇빛이 안 들어 축축한 기운이 돌았다. 낡고 기울어진 싱크대는 금방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벽 군데군데 시멘트가 드러나 있다. 주방 한쪽에는 비가 오면 물이 샌다. 이 센터 1, 2층 계단 턱이 높아 아이들이 많이 다친다고 한다. 이 센터의 이모(50) 사회복지사는 “월 520만원 정부 운영비 보조금으로는 49명의 아이 밥값과 교사 3명의 인건비를 대기도 벅차다. 개·보수 비용이 없어 제대로 손을 못 대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아동센터는 초등학생부터 고교생까지 남녀가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맞춤형 관리가 불가능하다.

 한국교육개발원 김홍원 방과후학교연구팀 선임연구위원은 “학교의 부담을 덜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면 돌봄교실이 지역아동센터 등 지역사회의 방과후 활동과 연계해 운영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서울대 조흥식(사회복지학) 교수는 “학교를 활용해 방과후 돌봄서비스를 구축하되 학교에 부담을 크게 주지 않는 형태의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돌봄교실=초등학교 저학년에게 방과후 보육·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저소득층 아이에게 우선권이 있으며 맞벌이부부 아동도 이용할 수 있다. 돌봄강사 1명이 20명 내외의 아이를 맡는다. 학기 중에는 수업이 끝난 후 오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끝나는 시간은 학교마다 다르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이지영·장주영·김혜미·이서준 기자, 민경진(부산대 국어국문학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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