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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ㅅㅂㅈㄹ'과 청년 구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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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권 호
정치국제부문 기자

욕먹기 좋아하는 이는 없을 테다. 욕이란 게 분노와 실망의 격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을 깨는 곳이 있다. 집권 여당 새누리당 얘기다.

 새누리당은 지난 6일부터 2030세대를 겨냥해 ‘새누리를 발전시키는 젊은이들의 리얼 디스전’이라는 긴 이름의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다.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을 UCC·사진·그림·글 등으로 표현해달라는 건데, 가장 그럴싸하게 만든 이에겐 100만원의 상금도 준단다. 공모전의 앞글자를 따 붉은 글씨로 ‘ㅅㅂㅈㄹ’이라 부각시킨 포스터가 온라인에서 화제를 끌고 있으니 절반의 성공이라 할 만하다.

 이번 공모전은 기획부터 실행까지 당 홍보국의 2030 직원들이 도맡았다고 한다. 같은 세대인 친구와 선후배들로부터 당이 외면받는 현실이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익명을 원한 홍보국 관계자는 “2030이 당을 별로 안 좋아하니, 뒤에서 욕할 바에야 대놓고 욕하라는 취지”라며 “조각조각 난 욕설들이라도 이를 모아 보면 어떤 메시지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한다.

 새누리당이 젊은층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다. 당에서는 이번 공모전 외에 청년들의 정책아이디어를 받아 구체화하려는 ‘청년 공책’이나 정치 아카데미 ‘캠퍼스Q’ 같은 행사로 2030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행사들은 모두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벤트’라는 한계가 있다. 관심을 끌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행사 발표 시 반짝 화제가 된 뒤엔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던 사례가 더 많다.

 이벤트는 이벤트로 끝나게 돼있다. 새누리당이 ‘청년 부대변인’에 임명했던 김진욱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8일 23세의 김씨를 청년 부대변인에 임명했지만 김씨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여자가 날뛰면 나라가 망한다”는 등의 막말을 날린 게 문제가 돼 나흘 만인 12일 면직 처분됐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당 청년국에서 추천한 인사를 그대로 임명하는 과정에서 문제 전력을 확인하지 못했다” 고 해명해 날림·졸속 인사였음을 스스로 드러냈다. 당내의 소통 부재와 검증 부실, 눈앞의 인기몰이에 집착하는 얄팍한 심리가 뒤엉켜 만들어낸 ‘참극’과 다름없다.

 새누리당이 진정으로 2030의 마음을 잡으려면 일회성 이벤트나 반짝 인기몰이식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답을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당의 정강·정책을 2030 친화적으로 바꾸고 물리적·심리적 격차를 허물어 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판돈을 걸고 이벤트를 해도 일회성 행사로 끝나고 말 것이다. 결국 답은 진정성이다.

권호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