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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산등성에도 인삼밭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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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속도로가 트이고 공장이 많이 건설됐다. 산골 화전지대로부터 대도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지역사회는 탈바꿈을 계속하고 있다. 근대화의 물결-. 그러나 내 고장의 발전은 정부 의 독려나 지원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알찬 주민들간의 피와 땀의 결정으로 봐야할 곳이 많다. 달라져 가는 지역사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펴본다.
충남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 김한철 노인(55)은 하루일손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 「텔리비젼「쇼·프로」를 즐기고 있었다. 밖에서는 마전 극장이 해묵은 유행가를 틀며 손님을 부르고 있었으나 이날 밤 극장에 모인 손님은 고작 열댓명쯤. 극장의 인기는 전파를 타고 오는 최신유행가요를 따르지 못했다.
김 노인은 『금산이 인삼의 명산지로 예부터 알려졌으나 해방 당시만 해도 추부면 인삼재배가구는 겨우 두 가구 뿐, 좁은 논과 밭이 생활근거의 전부였지요. 해방 이듬해 흉년이 들자 소나무를 베어 송계떡으로 생계를 잇는 통에 헐벗어 버렸고 농민들은 능쟁이 풀죽을 먹고 누렇게 부어 올랐었다』고 해방당시의 가난을 들려줬다.
김 노인에 의하면 이와 같이 가난했던 추부면 농부들이 가난을 벗게된 것은 약 8년 전쯤. 이 고장 특산물인 인삼재배에 힘을 쏟으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추부면 농민들은 해마다 인삼 밭을 늘려 지난해 1천 6백 83호 중 2백 5호가 24만 5천여평의 인삼포에서 9천 5백 12근의 인삼(싯가 3천 4백 7만 8천 8백원)을 캐내 1천 2백 83만 8천 60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추부면 중에서 가장 인삼밭으로 부유하게된 추정리 정영식씨(49)는 지난해 6백간 인삼포에서 1천근(싯가 5백만원)을 팔아 알부자로 소문났고 추정리 한 동네가 추부면 을류 농지세의 50%를 물고있는 셈 』이라고 이장 정해민씨(36)는 자랑했다.
지형등 천연조건을 활용할 줄 알았던 이 지방 주민들의 지혜가 단순한 논밭에만 생계를 의지해야 했던 과거에서 이들을 해방시켰다.
남폿불이나 등잔불만 보아오던 추부면에 전깃불이 들어온 것은 2년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 2년 동안 마전리 한곳에만 있던 행정전화가 18개리에 하나씩 가설되고 일반전화도 38대나 신설되었다. 『바로 붙은 금북면은 면사무소 소재지에 아직 전깃불이 켜지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고 으쓱해진 최윤현씨 (30)는 이어 『이 모든 것이 정부의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농민들의 피나는 협조의 덕이었다』고 말했다.
논에 새 흙을 넣는 객토 사업에 나선 농민들은 생활의 여유가 생기자 객토 사업 노임을 서로 자체자금으로 적립, 69년 통신시설로 배정된 군 예산 84만 8천 7백원에 1백 19만여원(노임포함)의 자체자금을 보태 18개리에 골고루 행정전화를 가설했고 전기공사 때는 모자라는 전주 70개를 사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보다 한해 앞서 신평리 최우복씨(38)는 농부 20명과 함께 지붕 개량계를 조직했다. 봄과 가을에 보리쌀과 쌀을 각각 1가마씩 거두어 제비를 뽑아 1년에 두채씩 지붕 개량을 해왔다.
이 소식은 이웃동네로 번져나가 2년사이에 전 농가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4백 25호가 초가를 면했다. 대전대학 경영학과 2년에 재학중인 정천조군(24)은 『앞으로 5년 안에 초가집은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10년 전만 해도 춘궁기가 다가오면 끼니를 걸르던 집이 많았던 이 고장 농민들에게는 이제『보리야 빨리 자라라』던 어린이들의 일기는 옛 얘기가 됐다.
그러나 지게를 지고 꼬불꼬불한 논두렁을 가야하는 재래식 영농방법은 계속되어왔다.
농민들은 이것을 고치키 위해 기존 옥천도로 옆에 나란히 폭 6m의 농로를 닦을 결심을 했다. 지난해 11월 한달 동안 추정리∼자부리∼비례리를 잇는 5천 4백m의 농로가 닦여졌고 이어 12월 한달 동안에는 초년도 목표인 자부리∼요광리∼신평리 간 4천 7백m를 앞당겨 닦았다. 『내년에 신평리∼성당리를 잇는 3천 9백m가 완공되면 추부면은 끝에서 끝까지 연결되고 이 새 농로와 옥천도로 사이에 사다리모 양으로 간선을 닦으면 비료 운반이나 추수를 지게 대신 「리어카」 나 우마차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농로는 금산판 경부고속도로가 된 셈』이라고 농부 양태복씨(35)는 기뻐했다.
우마차를 끌 수 있는 새 농로가 생기자 지난해 자부리 김룡준씨(49)는 같은 마을 16명과 함께 한우단지를 본떠 자체자금으로 3만원짜리 송아지 16마리를 샀다. 1년 후 송아지를 기른 사람들이 6만원에 이것을 팔아 남은 3만원 중 1만 5천원을 자체자금에 넣어 10년 후에는 전 부락이 농우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4년전 2만원을 빌어 「비닐·하우스」로 1백만원을 벌었다는 김기수씨(32)는 논 없는 32명을 모아 원예조합을 만들어 13만여평의 「비닐·하우스」에 오이·참외 등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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