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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지옥」을 증언한다.(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1969년 12월 11일 낮 12시 25분. 서울을 향해 강릉비행장을 떠난 KAL 소속 YS·11기는 예정보다 약간 늦게 이륙했다. 기체가 안전 고도를 잡고 서울로 향해 나는 줄 알았을 때「에어·포키트」에 빠진 것처럼 갑자기 서너 번 크게 동요했다. 그런 뒤 잠잠했다. 왼쪽 맨 앞줄의 두번째 자리에 앉아 있던 김진규씨(41) 는 비행기가「에어·포키트」에 빠지기 직전 키 큰 남자가 조종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의심스러워 옆자리의 의심스러워 옆자리의 구자득씨 (40)에게 말을 건넸다.
『방금 들어간 게 간첩 아닐까요?』
구씨는『그럴리가 있겠느냐』면서 웃었다. 운수 사업 관계로 서울 왕래가 잦은 편이 주운섭씨는 맨 뒷좌석에서 신문지로 얼굴을 가리며 잠을 청했다. 약 40분쯤 지났을까, 비행기를 자주 탄 경험이 있는 주씨는 창밖에 갈매빛 바다가 펼쳐 있는 것을 보았다.
이때 주씨는 비행기가 기류관계로 인천까지 간 것으로 알았다.

<두드려도 대답 없는 조종실>
문득 KAL기 양쪽에 전투기 모양의 비행기 2대가 따랐다. 「스튜어디스」정경숙양이 허둥지둥 조종실 문을 여러 번 두드렸으나 반응이 없었다. 성경희양이 승객을 안심시키는 말을 했다. 『여러분 조용히 해주세요. 인천 앞 바다 같지 않습니까?』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의 일이었다. 2대의 비행기 동체에 그려진 표지는 분명히 북괴공군기임을 잘 나타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본 승객들은 모두 새파랗게 질렸으나 잠을 자고 있던 사람 가운데는 비행기가 불시착할 때까지 전혀 모른 사람이 많았다.
정경숙양이 침착한 목소리로『만일에 대비해 달라』고 말했다. 박명원씨(36·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현역 육군대령인 남편의 사진 넉장을 떨리는 손끝으로 찢어야만 했다. 한동안 부산했다.
낮 1시 5분께였다. 비행기가 크게 다섯 차례나 회전을 하더니 착륙하는가 싶었다. 숲 속에 자리잡은 조그만 비행장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주운섭씨는 창 밖을 내다보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총구를 기체쪽으로 겨냥한 괴뢰군들이 술 속에서 포복으로 새까맣게 몰려나오는 게 아니가. 이경헌씨(38)는 영문도 모르고 가방을 든 채 일어서다 말고 푹 주저앉았다. 그 곳이 함흥 주변의 연포였다. 북괴군관 한 명이 권총을 겨눈 채 기체로 들어왔다.

<숲속엔 기체 겨냥한 괴뢰군>
창의「커튼」을 모두 내리라고 호통이었다.『각자 가진 손수건으로 눈을 가리오』또 한번 고함치는 소리를 들었다.
이때 기체밖에는 2대의「버스」와 검은「세단」1대가 대기해 있었다. 비행 중 조종사실에 들어갔던 키가 크고 얼굴이 긴 사나이 (조창희)는 흰「마스크」를 한 채「세단」에 올라타 괴뢰군 군관의 호위를 받고 어디론지 사라졌다. 승객들은 그 뒤로 송환될 때까지 단 한번도 그 사나이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살을 도려내는 것 같은 영하 20도의 추위였다. 비행장 대합실로 끌려갔다.「스튜어디스」정·성양은『이 승객들을 어떻게 하나』하고 발을 굴렸다. 비행장 대합실에서 서너 번 통사정 끝에 변소로 가던 한덕호씨(39)는 복도에서 기장 유병하(39)·부조종사 최석만씨(38)가 눈을 가린 채 핏기 없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국산 쉐타를 미제라고 우겨>
하오 7시쯤 두 대의「버스」편으로 함흥역전의 함흥여관으로 옮겨졌다. 서울의 3류 여관보다 못한 곳을「호텔」이라고 했다.
김진규씨는 길거리를 지나가는 여자들의 대부분이 발목까지 치렁치렁한 검은 무명옷에 검정 고무신 차림으로 통일되다시피 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양장차림은 송환될 때까지 꼭 한번 봤을 따름이었다.

<피납자 둘마다 급식 다르고>
남자들의 대부분은 배낭을 진 채 다니는 것이 눈에 두드러지게 보였다. 이불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질렀고 베개는 때가 절어 반질반질했다. 권오집(43) 최돈숙(39)씨 부부만 한방을 쓰고 나머지는 각각 독방 신세였다. 여관의 변소에는 경비원이 두 사람씩 지켜서 있었다.
이경헌씨는 직업이 무직이라 했다가『반동』 낙인이 찍혔다.
주는 밥도 사람마다 달랐다. 이씨의 경우엔 쌀밥이 있으나 최원일씨는 강냉이죽을 자주 먹었다고 했다. 김진규씨의 경우, 몸수색을 당할 땐 실소까지 해야만 했다. 국산「스웨터」 를 보고『이게 미제냐?』고 묻고는 아니라고 해도『거짓말 잘하는 반동』으로 몰았다.

<라이터·시계 약탈하기도>
팔목시계와「라이터」를 보자 얼른 뺏어「포키트」속에 집어넣고 도망치듯 나가기도 했다. 감시원 한 명은 토·일요일이 없는 북괴의 엉뚱함을 말하다 움찔하기도 했다. 그들의 상투적인 선전문을 암기토록 강요했다.
김진규씨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이틀이나 단식을 했다. 그랬더니 사홀 째 비로소 시커먼 보리죽을 끓여주었다. 한 끼는 냉면을 줬으나 도대체 씹을 수가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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