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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영세 자유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변두리 이발사, 구두수선공 등 각종 자유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마치 하루를 살기 위해 하루를 버는 듯 했다. 저축이라곤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지금의 직업을 천직으로 일삼았다. 이들은 『평생 벌어 집 한간이라도 마련한다면 아이들한테 떳떳하겠다』고 입을 모으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서울 영등포역 앞 네 거리의 한 모퉁이 양지바른 쪽에서 30년째 남의 해진 구두만을 손봐주고 있는 구두수선공 정현모씨(52)의 한달 수입은 대충 1만5천 여원과, 부인 나갑순씨(47) 가 골목 어린이들을 상대로 목판에서 벌어들이는 8천여원을 합쳐 모두 2만3천여원으로 한달을 산다. 이 수입이 일곱 자녀들과 정씨 부부 등 9명이 살아 나가는 먹줄.
정씨 집 한달 지출내용을 보면 쌀값 9천7백50원, 연탄값(집과 가게) 1천9백20원, 국민학교에 다니는 세 자매의 학비가 2천5백원, 피복비 4천5백원, 잡비 등 이 지출을 손꼽아 어림해보던 정씨는 『낡은 구두창만을 두드리고 꿰매기 30년. 아직도 11만원 전세 단간방에서 아홉 식구가 새우잠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씁쓸해 했다.
눈비가 내리는 날은 공치는 날이 되고 그나마 눈이 자꾸 어두워져 이제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정씨는 『전체 국민의 살기는 좀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우리네들의 생활은 10년 전이나 다름이 없다』고 했다.
서울시내 Y시립병원 시체실에서 시체 처리일을 맡고 있는 박노일씨(53·서울 성북구 성북동 7통7반)의 월수입은 약2만원. 염할 시체는 하루에 1구 꼴. 1구를 염하는데 3천원, 이중 박씨 몫으로는 1천원이 떨어진다.
박씨는 매달 1만원 정도를 성북동의 부인과 3남매의 살림에 보내주며 막걸리 값 4천원, 담배값 1천5백원, 자취비 6천원, 잡비 2천원 정도로 한 달을 꾸려간다. 박씨는 [버스]값을 절약하기 위해 병원의 무료병동에서 자취를 한다.
그러나 박씨는 지난 여름 장남 만석군(10·성북 국교3)이 갑자기 병원신세를 지는 바람에 지금까지 5천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약2년 전 전북 완주에 지화전으로 생계를 꾸리다가 『밥을 먹을 수가 없어』 무작정 상경, 이일을 붙잡았는데 별 기술이나 자본도 없어 늙어 쓰러질 때까지 계속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한숨을 지었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의 C목욕탕 휴게실의 암마사 김상준씨(42)의 경우-. 16살 때부터 눈이 멀어 [맹인의 생존 수단]으로 암마를 배웠다.
시내 일류 [호텔] 등에서는 1인당 1천원씩 받는다. 그러나 [호텔] 주인에게 3분의1 정도를 뜯기는 것이 통례로 되어있어 이것이 싫어 변두리로 나왔다는 김씨는 1인당 5백원씩을 받아 월수입은 통틀어 1만원 안팎.
이제는 『힘에 겹고 수입이 적어 곧 집어치우겠다』면서 침술을 연구, 침술원장이 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라 했다. 또 낡은 의자 2개를 놓고 변두리에서 무허가 이발소를 벌이고 있는 박장헌씨(51·서울 성북구 종암동 산1)의 월수입은 1만5천원 안팎. 대인50원, 소인30원씩을 받고 있다.
박씨는 몇 년 전까지 동대문 시장에서 구멍가게를 하다가 사기를 당해 망한 후 옛날 고향에서 동네 아이들 머리를 가끔 깎아준 경험만으로 빚을 내어 이발소를 차렸다.
식구가 4명인 박씨는 가계를 따져보다가 『도대체 내가 밥을 굶지 않고 산다는 것이 기적일 수밖에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채영창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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