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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칼럼] ‘미스터 쓴소리’에 귀 기울여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박근혜 대통령이 요즘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가장 많이 발언하는 분야는 창조경제·고용·복지다. 외교안보나 국정홍보의 보고를 들을 땐 ‘끄덕끄덕’ 넘어간다고 한다. “잘하고 있다”는 뜻을 표시하는 제스처다. 반면 아무 말이 없으면 “판단하기 이르니 두고 보겠다”는 뜻이다. ‘레이저빔’으로 통칭돼온 싸늘한 시선은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대안을 내놓으라”는 뜻이다.

 창조경제나 복지·고용 문제가 나오면 관계자들에게 대통령의 레이저빔이나 질책이 쏟아진다는 전언이다. 그만큼 경제가 대통령 기대만큼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취임 다섯 달을 넘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공행진 중이다. 하지만 메인 게임은 경제·민생 분야에서 결판이 난다. 경제가 이렇게 죽을 쑤다간 지지율은 언제라도 곤두박질할 수 있다. 박 대통령도 그걸 알기에 경제 살리기에 열을 올리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장외투쟁은 청와대와 정부와 여당에 대형 악재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민주당을 구태정당으로 못박고 정국 주도권을 장악할 기회”라고 여기는지 모른다. 하지만 민주당이 원내로 돌아오지 않으면 정기국회는 파행사태를 면치 못하게 된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정의 키를 쥔 집권세력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당장 박근혜정부가 하반기에 추진하려는 부동산 거래 활성화 법안과 외국인 투자 촉진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의 빅카드인 창조경제도 동력을 잃을 우려가 커진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예산을 제때 승인받지 못해 벤처기업 육성 같은 내년도 핵심 사업이 지연될 수 있어서다. 국회선진화법 덕분에 야당이 국회를 나가버리면 여당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해답은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는 원로 정치인 조순형(7선) 전 의원이 냈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지도부를 불러 대승적 견지에서 민주당의 요구를 대폭 수용토록 권고하고, 국정조사를 진행시켜야 한다”는 거다. 당장에야 힘겹겠지만 막상 부딪치면 여당에 그리 힘든 싸움만은 아닐 것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도 자신을 은근히 괴롭혀온 ‘대선 불복’ 프레임을 훌훌 털어낼 기회를 만들 수 있다.

 8월 뙤약볕 아래 장외로 나선 민주당에도 문제가 많다. 현장에 나가 보면 길거리에서 홍보물을 돌리는 의원들에게 “민주당, 힘내라”라고 격려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은 드물었다. 시청 앞 서울광장에 세워진 민주당 천막에 찾아온 사람들은 60대 이상 어르신들이 태반이었다. 젊은 층이나 회사원은 바로 옆에서 진행되는 기업 판촉 행사에 몰두하고 있었다.

 민주당은 민주주의에 관한 한 불굴의 투사이자 파수꾼임을 자부해왔다. 군부독재 타도와 직선제 개헌, 지방자치, 남북대화 같은 굵직한 어젠다를 주도해왔다. 민주당으로선 맑아진 공기에 오염물질이 많아지지 않도록 감시의 끈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하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을 폭로하고, 국정원 조직을 개혁하려는 노력도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공기만으론 살 수 없다. 단백질과 철분·비타민도 필요하다. 민주화가 정착된 요즘, 국민들은 대기오염을 막는 노력 못지않게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어낼 능력을 갖춘 정당을 원한다.

 민주당이 국정원 문제만 붙들고 늘어져선 결코 수권정당으로 도약할 수 없다. 방향을 바꿔야 한다. 상대방의 가장 약한 고리를 공략해야 한다. 그게 바로 경제고 민생이다. 민주당이 이 부분을 공략하면 희망이 있다. 자신들이 과연 집권 능력을 얼마나 갖췄는지 보여줘야 한다. 달라진 시대는 새로운 숙제를 내놓는다. 그러려면 경제를 아는 진짜 인재들을 영입하고, ‘근혜노믹스’의 문제점과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장외투쟁을 하는 마당에 웬 ‘경제 타령’이냐고? 장외투쟁 이후 정당 지지도와 내년 지방선거의 승패를 판가름 지을 변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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