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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자취생의 고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34호 31면

많은 외국인처럼 나도 고등학교 졸업 후엔 독립해 혼자 살았다. 혼자 사는 것이 나에겐 정상이다. 한국인들이 식사 때마다 밥과 김치를 먹듯 내게 자취 생활은 특별한 게 아니다. 그저 내 삶의 방식일 뿐이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사람은 항상 가족과 함께 지낸다. 최근엔 1인 가구 숫자가 늘긴 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가족 중심 문화이며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친구들은 내게 항상 “어떻게 혼자 살아. 힘들지 않니”라고 물어보곤 한다. 내가 마치 집을 잃은 아이인 것처럼 걱정해준다. “걱정해줘서 고맙지만 난 괜찮아”라고 답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난 반대로 혼자 산 지가 오래돼선지 가족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게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엄마 곁을 떠난 지 거의 20년이 지났고 독립적인 여성이 될 수 있도록 나의 일과 건강, 인간관계를 잘 지키려고 노력해 왔다. 혹시 긴급 상황이 터지면 전화 한 통에 달려와 줄 가족과 친구가 있다는 것도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서울에서 홀로 사는 외국인들 모두가 나처럼 복이 많은 건 아닌 것 같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최악의 경우가 닥치면 어떻게 될지 스스로 생각해보기도 한다. 최근에 가깝게 지내온 외국인 교수 친구를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는 아주 똑똑한 데다 키도 1m90㎝가 넘는 멋진 외모의 소유자다. 마음씨까지 훌륭하다.

그런데 최근 병원에 갔다가 신장에 병이 생겨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가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세브란스병원의 시설은 참 좋지만 그 친구의 한국어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 의사나 간호사와의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거나, 충분한 설명을 받지 못해 친구의 몸 상태가 악화된 것이다. 이 친구도 혼자 사는 터라 걱정이 더 앞선다. 친구의 가족들은 저 멀리 남미에 살기 때문이다.

 이 친구를 생각하면 밤에 잠도 오지 않는다. 만약 최악의 사태가 생길 경우 남미에 있는 친구 가족에게 연락을 할 방법이며, 한국에서 장례식 절차는 어떻게 밟아야 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물론 그가 재직 중인 대학교와 그 친구 나라의 대사관에도 연락을 하겠지만, 만반의 준비를 해 두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사는 외국인이라는 동병상련 때문일까.

 감사한 건 친구가 사는 집 주인 아주머니의 친절함이다. 아주머니는 내 친구 걱정을 해주시며 자주 여러 일을 살펴주신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그 어르신의 따뜻한 마음은 잘 전해진다. 이렇게 정이 넘치는 문화가 한국의 매력이다.

 친구가 생을 마감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혼자 사는 나를 보며 안쓰러워하던 내 한국 친구들의 마음도 이해하게 됐다. 나와 연락이 닿지 않았을 때 걱정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얼마나 답답해했을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 전화기가 꺼져 있거나 무음으로 돼 있어 전화를 못 받았을 때 속이 탔다는 가족이나 남자친구의 말을 들으며 예전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젠 아니다. 혼자 사는 외국인인 만큼 만일의 사태를 생각해 이것저것 준비를 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살며 룰루랄라 즐겁게만 지냈던 내가 이젠 철이 드는 게 아닌가 싶다. 친구를 통해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물론 한국은 선진국처럼 의료시설이 잘 돼 있고, 나도 건강하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들이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간과해선 안 될 것 같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당신 주변에 혼자 사는 노인이나 외국인 등이 있다면 그들에게 “내가 여기 있고, 당신을 도울 수 있다”고 알려주면 어떨까. 그 한마디가 그 사람에겐 정말 큰 힘이 될 수 있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사람들은 결국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모두의 마음이 더 든든해질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수전 리 맥도널드 미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학사를, 하버드대에서 교육심리학 석사를 받았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한국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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