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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어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제대비로 서울서 조그만 사업을 벌였다 망한 강남일(50)씨는 강원도고성군죽왕면오호리 바닷가에 재기의 보따리를 풀었다. 살림을 모두 처분해서 마련한 돈은 20만원. 10만원짜리 3간 초가를 사고 8만원을 들여 전마선 하나를 샀다.
아내가 나무를 해대고 부식은 바다서 나는 것으로만 때웠다. 담배도 10원짜리 파랑새만 피웠다. 안팎이 허리를 졸라매고 바다에 매달렸다. 그러길 10년, 그러나 강씨내외에게 돌아온 건 낡아빠진 배뿐, 안방엔 10년전에 갖고 온 재봉틀과 「라디오」만이 고물이 된채 놓여있다. 그의 살림살이는 너무도 뻔했다.
지난해 12윌 강씨가 새치등 잡어를 잡아 번 돈은 총 9천6백원. 지출을 보면 다섯식구의 양식값이 쌀·보리 6말씩 6천원, 국민교에 다니는 2남 학비 3백원, 파랑새 담배값 3백원, 추운 바다서 돌아올때 빼놓을 수 없는 소주값이 1천원, 잡비 1천원, 그물 수선비 2천원등 모두 1만6백원으로 꼭 1천원의 구멍이 났다.
어민 1인당 연 어획고는 국민 1인당 생산고에 비해 11%나 떨어지는 3만7천3백70원. 영세어민은 전체 어민의 73%, 16만 가구. 배를 가졌다 해봐야 범선이 고작인 이들은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빚의 쳇바퀴』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범선도 없어 남의 배를 얻어타는 어민은 3분의 2 꼴.
전도금 빚에 고기를 헐값에 넘기는 것을 막아 어민을 보호한다는 어촌계의 위판사명도 빚의 악순환앞에 무력해지지 않을 수 없다.
공현진 어촌계장 정창화(31)씨는 『심할땐 50%까지 고기가 암매되지만 뻔히 처지를 알면서 제지할 수가 없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장수씨는 오호리에 아직껏 영어자금이 한푼도 안나와 전도금에라도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영세어민이 발버둥쳐도 허리를 못펴는 가장 큰 요인은 한정된 자원 탓이라 했다. 동해의 경우 동삼 명태잡이, 4월 한달 미역, 8, 9월 오징어잡이가 고작. 나머지 반년은 공사판에 나가 밀가루라도 타 생활에 보태야 한다. 옴츠리고 뛸 여지가 없다.
오호리 백흥수(56), 서만구(40)씨등은 바람때문에 열흘을 갇혔다 지난 4, 5일 바다로 나갔지만 허탕만치고 빈배로 돌아왔다.
거진의 이철룡(45)씨는 『1·4후퇴로 월남해 왔을적만 해도 항내에 오징어떼가 밀려들어와 고기와 사람이 말을 할만한 정도였다.』며 옛날을 아쉬워했다.
지금은 10마일 밖을 나가야 잡힐까 말까. 오징어잡이가 주업이던 공현진도 3년전부터 오징어가 얼씬도 않아 4백가구가 미역에 목줄을 걸었다.
저인망이 33mm 망목을 줄여가며 바다밑까지 훑어내니 씨가 안마를 수 없다는 것.
공현진의 이종득(54)씨는 『동력선만 1척 마련하면 그런대로 바다에 재미를 붙이고 살겠다.』고 말했다.
9명이 타는 10톤짜리 동력선의 경우 명태철이면 하루 12만원은 수입을 올린다. 대부분 용선의 관례를 보면 선주에게 28%, 선장에게 15%를 바치더라도 선원 8명이 하루 7천원꼴은 벌수 있다. 이런 날이 자주 오는 건 아니지만 동력선만 타면 먹고는 산다고 어부들은 말했다. 그렇지 못한데 영세어민의 시름이 있다. 【김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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