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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의 유산|방황과 갈등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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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0년대의 세계가 격변을 치렀다 하더라도 50년대와 확연히 구분할만한 이유는 없다. 보수주의는 지도자의 영도력에 대체되었지만 세계는 크게 두갈래로 나뉘어 으르렁거리고 있다. 인간은 본질문제를 풀지 못한채 방황하고 있다. 냉전은 끝난듯하나 동서간의 갈등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식민지 해체작업은 끝났다고 보겠지만 공업국과 후진국의 격차는 넓어만 가고있다. 철의 장막이 걷혔다는 것은 아직 원단에 속한다. 장막이 아무리 높다해도 동구에 파고드는 자본주의적 요소는 막을 수 없다. 「레닌그라드」의 외딴 박물관이며 「루마니아」의 「호텔」, 「불가리아」의 휴양지에 구미의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다. 그러나 입국사증과 외화를 얻기가 힘들어 그같은 여행은 줄어들 판이다. 「크렘린」당국이 주장하는 바와같이 사회주의 제국의 정치적·학문적 자유가 허용되고 있음은 중요한 일이다. 1962년까지 「흐루시초프」는 서백림의 서방측 통로를 봉쇄하고 서방진영의 분열을 꾀했지만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백림장벽만 높였다. 백림의 긴장이 가시자 「드골」은 동서화해에의 길에 거보를 내디뎠다. 「나토」로부터 불군을 철수하고 사회주의 제국과 협조를 증강함으로써 동서관계를 변질시키고 이념적측면에서의 미-소 접근을 촉진시켰다.
이같은 정책은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를 연결하려는 구주체제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같은 구상은 68년 학생위기이전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프랑스]공산당은 「체코」사태를 소련과 자본주의 국가간의 일시적 사태 경화로 봤기때문에 신좌파의 혁명노선보다는 합법적인 정치투쟁의 길을 택했다. 프랑스 학생의 봉기와 「체코」사태 및 「드골」의 퇴진을 불가피하게 했다.
그러나 거인의 퇴진을 이어받은 「풍피두」대통령은 그 인물의 됨됨이로 보아 미-소 두 초대국을 헤엄쳐나갈 주역은 못된다. 「풍피두」는 「현상변개」정책으로부터 위험탈피의 방향으로 조정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은 동서분열을 종식시키려는 의도에서 우러났다. 핵확산금지조약 회담, 독소접근, 범구주안보회의등은 더욱 그런 간격을 좁혔다. 「프랑스」는 「나토」에서의 역할을 재개하지 않을 것이며, 「루마니아」는 「유고」와 같은 독자노선을 계속 밀고 나갈 것이다. 예측하긴 어려워도 아마 70년대의 구주는 50년대나 60년대의 구주보다 각광을 받을 것 같다. 영국과 기타 가입희망국이 구주공동시장에 가입할 전망은 밝은 반면 강화된 구주세가 철의 장막을 걷어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60년대는 개발의 해라 했다. 「유엔」의 원조없이 패전국들이 부흥했다.
공산주의라는 압제속에 가난한 동구는 상당한 공업력을 키웠다. 「이란」과 같은 석유국은 대체로 침체상태에 있다. 독립의 기쁨대신 빈곤의 쓰라림을 맛보고 있는 나라들이 많다. 「가진 나라」들은 「못가진 나라」에 외원을 더이상 베풀려하지 않는다. 야심과 공포는 방대한 군사력을 갖추었으나 이젠 물질적·지적 성장을 바탕으로한 경제력을 키우려는 의욕으로 바뀌었다.
중-인 분쟁, 인-파키스탄 분쟁, 마련과 인니의 분쟁, 「예멘」전쟁,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격돌, 콩고내전, 그리고 「비아프라」비극까지도 부국으로부터 다투어 무기를 사다가 가난한 이웃을 죽이는 참담한 전쟁 그것이었지만 이젠 그런 분쟁은 끝났다. 전쟁을 해서 희망을 본 것은 누구인가. 전쟁을 통해 국경분쟁이 완결됐는가. 「쿠데타」로 어떤 전환을 가져왔는가.
더욱 유감된 일은 이들 분쟁국들이 형편없는 빈자라는 것이다. 뒤늦긴 했어도 「존슨」대통령의 용단이 없었던들 중공군이 틀림없이 월남전에 개입했을 것이며 그랬더라면 전쟁은 지금과 같은 종전 무드에 접어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중동전만 해도 「6일 전쟁」때문에 더욱 악화했고, 서로 옳다고 믿기때문에 쳇바퀴를 돌고있다.
주목할 것은 세계의 여론들이 이같은 모순과 갈등을 능히 헤쳐 나갈만한 진보적인 힘을 결한채 환상속에 묻혀있다는 것이다. 「드골」 「케네디」 「아데나워」 그리고 「흐루시초프」같은 인물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단 말인가. 그들은 감동과 함께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적어도 무관심속에 빠지게 하지는 않았다.
모택동·「티토」 그리고 「프랑코」가 살아있긴해도 그들은 곧 사라질 인물들이다. 세계의 권력자들은 그들의 이념적 색깔을 가릴 것 없이 모두 용기보다는 보수주의에 빠져있다. 근시안적인 국가방어와 선거전략에 보다 열중하고 있다.
위험스런 일은 될수록 피하고 조금이라도 양보를 하지 않으려하며 상대방을 의심하려 들고있다. 젊은 세대와 구세대 사이에도 관용과 참신한 출발점은 찾아 볼 수 없다. 제각기 옳다고 주장한다. 스스로를 개혁하지 않으려는 사회는 오래갈 수 없는 것이다. <필자는 「르·몽드」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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