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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에 맡겨라-성기수(과학기술연구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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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70년대의 종장에서 회고할때 71년대 한국의 두드러진 사회현상으로서「컴퓨터」의 대중화를 들수있다. 60년대에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한 「모터」(동력기계) 들은 한국경제의 양적팽창의 추진력을 제공했었는데 비해서 70년대의 한국무대에 대거 진출한 「컴퓨터」들은 합리화·효율화·자동화를 모든 분야에서 촉진하여 한국은 이제 질량모두 현대국가의 면모를 갖춘 셈이다. EDPS(전자정보처리조직)화는 정부「서비스」, 금융「서비스」, 대량생산제조업에서 개인생산성을 1천불 수준으로 올려놓았고 이로말미암아 다른산업의 간접생산원가도 대폭 줄어들었다. EDPS는 70년내 중엽에 전국대학의 교양 필수과목으로 채택되었고, 최근에는 고등학교와 중학교 교과내용 개편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삼각함수표, 대수표, 계산척, 주판, 탁상계산기 등은 이제 일상생활에서 보이지않게, 되었고,「샐러리맨」들은 봉급계산, 전표정리, 재고관리 등의 단순 반복 노동에서 해방되어 창조적「아이디어·맨」들이 되었고 저녁에 집에일찍 돌아가도 「컴퓨터」가 밤사이에 잔무정리를 해주게 된다. 집에 돌아가면 주부는 TV에서의「컴퓨터」의 충고를 받아서 만든 경제적 영양식「매뉴」의 저녁식사를 해놓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컴퓨터」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식생활의 합리화는 저축증대와 국민체위 향상뿐 아니라 물가의 횡포도 막게되어 60년대 보다 명랑한 안정된 사회가 이루어지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일이 숴워진 사람은 「샐러리맨」뿐이 아니고 「블루칼러」직업에서도 많이 있게 되는데, 공장이나 기계의 「핸들」이나 「스위치」 등을「컴퓨터」에 맡기는 일이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다.
70년대의 한국의 EDPS화를 상징하는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69년말과 70년초. 최초로 중형급「컴퓨터」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한국전자계산소에 각각 설치가동. 70년의 정부종합EDP「센터」금융단EDP「센터」, 국세청EDPS가동, 금성사 삼성물산EDPS가동 숭실대학 서울대공대EDPS가동등,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서 Remote Teminal 실험성공, EDPS한글화 성공. 71년 기계공업육성자금으로 시범기계 제작공장 완성, 자동차 「엔진」국산화 성공을 계기로 기계공업이 우리 수출산업의 유망주로 등장. 72년 각대학에서 EDPS를 교양필수과목으로 채택, 중·고등학교 교과내용 개편, 전국 규모의 통신망과 EDPS와의 연결성공,철도청 내무부 치안국 대한금융단 KIST 등에서 실용화. 73년 경제기획원에서 PPBS(예산업무EDPS화) 완성. 75년 KIST 체신부 등에서 학교 가정 사무실용의 Remote Terminal「ㅅ비스」개시 76년 통신위성을 통한 국제EDP Network System에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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