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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빚」에 농촌은 우울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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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해마다 연말이면 고질적으로 농촌을 휩쓰는 농협의 각종 외상비료대금과 영농자금·군대여곡 회수 바람이 올해도 계절풍처럼 어김없이 불어닥치고 있다. 농협이 농촌의 영세성을 벗어나게 하기위해 영세농가를 상대로 외상으로 준 각종 비료값과 영농자금이 이자와 함께 자라 농민들은 추수의 기쁨도 맛보기 전에 빚더미 위에 올라앉기 마련이다. 풍성한 추수를 끝내고 이웃사랑방에 모여앉아 1년간의 고된 농사일의 시름을 풀던 일은 아득한 옛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더구나 가져다 쓴 비료와 영농자금은 고사하고 듣도 보지도 못한 비료대금과 영농자금을 내라는 독촉장이 각 농가에 날아들어 농민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 지난 61년 농협발족 이후 전국 각 농가가 꾸어다 쓴 각종 영농자금과 외상비료대금 연체현상 중 농협의 각리동조합장들이 순박한 농민을 등쳐온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농협이 비료·영농자금 방출에서 효과적인 회수를 위해 각 농가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부락단위의 리동조합을 통해 방출하거나 회수해 리동조합장이 조합원인 농민들의 도장을 모아 가지고 있을 기회가 많기 때문에 흑심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재산차압까지 단행>
이들은 농민들이 쓰고 갚는 농자금과 비료대를 받아 들어먹거나 농민들의 도장을 멋대로 사용 연대보증을 세워 자기가 농자금 대여곡등을 타내 먹고 달아나 농민들은 빚을 갚고도 농협과 군으로부터 독촉장을 받아 끝내는 재산차압까지 당하는 등에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을 하루아침에 등져 이농하는 비극을 빚고있다.
61년 농협발족이후 이들 리동장과 관계 공무원들의 갖가지 부정에 걸려 피해를 본 농가만도 3천여 가구가 훨씬넘는다. 전남의 경우 빚에 몰려 이농한 가구만도 3백50여가구라는 두드러진 기록을 보이고 있다. (본사집계)

<구경못한 영농자금>
지난65년 경북상주군중동면 상리조합장이던 정성모씨(42)는 이 마을 2백여 농민들의 도장을 맡고 있음을 기회로 이들을 연대보증 세워 농협으로부터 1백여만원의 영농자금을 타내 달아났다. 자기도 모르는새 보증인이 되어 빚진 농민들은 66년4월 우선60여만원의 빚을 갚았으나 그간 나머지 빚에 95만원의 이자가 붙어 이 마을 정성화씨(49)는 자기몫 1만여원을 갚을 길이 없자 지난 9월 상순극약을 먹고 자살을 꾀해 중태에 빠졌다가 11윌20일 끝내 죽고 말았다. 그리고 빚을 갚을 길이 없었던 이 마을 20여 가구의 농가는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을 등진 채 뿔뿔이 흩어졌다.

<전남에 2백여건>
올들어 전남도내에서 한해자조근로사업장에 주는 노임양곡과 외상 또는 현금으로 나간 비료대 영농자금수산자금등을 잘라먹은 사고는 2백여건에 1억5천만원이 넘는다.
승주군월등면면장 유영강씨(48)등 4명의 관계직원은 지난1월2일 한해 사업장으로 나간 밀가루 7천㎏ (19만9천4백원어치)을 빼돌려 상인에게 팔았다가 구속됐었다. 지난해 경북 금릉군 어해면옥계동 동장이었던 박찬용씨(38)가 이마을 하용수씨(41)등 26가구를 보증세워 군으로부터 1백여가마의 대여곡을 받고 또 51가구를 보증세워 농협자금 1백만원을 타내서 행방을 감추어버렸다.

<추곡 강제징수도>
자신들도 모르는 새 보증인이 된 농민들은 12월1일 군직원들이 26가구에 대해 가택을 수색하다시피 한 끝에 먹지도 않은 추곡68가마를 강제로 거두어 간뒤 1주일도 못돼 이번엔 박씨가 51가구를 보증세워 타낸 1백만원의 영농자금에 대한 차압바람까지 불어닥쳐 농가의 가재도구일체와 심지어는 솥뚜껑에도 압류딱지가 붙었다. 겨울철을 넘길길이 없는 이 마을 15가구의 농민들은 벌이를 찾아 남부여대하고 도시로 떠났다.
올해 경기도내 18개군조합 관내에서 발생한 영농자금 사고를 보면 화성군을 비롯해서 6건이 발생 피해액은 1백47만7천3백64원으로 조합원 97가구가 억울한 빚에 눌려 있다.

<채무2·5%가 사고>
화성군 마도면 해문리64가구의 농민들은 지난 64년부터 67년 사이에 조합서기로 있던 이대성씨 (31·복연중)가 자기들이 낸 비료대금 57만원을 가로채 구속되는 바람에 64가구 중 42가구가 약30여만원의 억울한 빚을 갚았다.
농협충남지부는 올해 각종자금 회수목표액을 29억6천1백만원으로 잡았는데 이중 약 2.5%인 9천7백61만원이 농협발족 이래의 사고채권으로 나타나있다.
농협은 12월10일까지 이 고질채권을 짊어지고 있는 6천25가구의 농가에 법원을 통한 지불 명령을 내려 농민들에게 채무자 아닌 채무자굴레를 씌우는 1차적인 기초작업을 끝냈다.

<농협선 발뺌급급>
부여군 변산면정리동 김창현씨(68)등 61농가는 지난 66년 이 마을 이장이던 김영상씨(46) 가 농민들로부터 받은 비료대금 9만7천원과 영농자금 6만원등 모두 15만7천원을 잘라먹고 달아나자 보증인으로 되어있는 농민들이 갚아야한다는 농협의 엄포에 눌려 이들 중 10여가구가 올봄에 외상으로 가져다 쓴 요소 비료등 각종 비료를 배급가격보다 3백원이 더 비싼 9백81원으로 계산해 평균10부대씩의 대금을 물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해 농협측은 농민들이 자진해서 취한 처사라고 발뺌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북의 경우 지난61년 이후 모두 2만6천2백여건의 비료 및 농사자금 사고가 발생, 29일 현 미수액이 3억5천여만원에 이른다. 이 바람에 피해농가는 부지기수로 전도의 2백만여 농민들이 직접, 간접으로 피해를 보고있다.

<계몽부족도 큰 원인>
그런데 이 사고 중 약80%가 지난 65년 이전에 발생한 것들로 농협이 이 당시 회수가능성을 참작하지 않고 마구 영세농가에 각종자금을 푼데다가 각 리동조합장들의 횡령사건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관이 농민에게 대여곡을 방출하면서 무지한 이들에게 충분한 계몽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거저 주는 줄 안고 마구 가져간 농가가 많았다는 뒷얘기이다.
올들어 농협강원도 지부관내 15개군조합에서 공식집계 된 것을 보면 비료대 영농자금등의 사고건수는 9건에13가구가 피해농가로 나타났으나 안 나타난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농민들2중상환도>
지난4월 양양군 진평리조합 간사 양용석(34)가 이 마을 이기석씨(45)등 13가구의 농민들로부터 받아들인 농자금 16만3천6백82원등 모두20만9천5백57원을 들어먹고 달아나는 바람에 애꿎은 농민들만 이중부담을 지고 있다. 속초시 호학동 사평 자활이주 정착민 중에서 지난63년 이후 외상으로 가져다 쓴 비료대를 갚지못해 7백20만여원이나 밀리고 있는가 하면 63년이후 동해안수해 복구지구에 대여한 양곡가운데 시군 관내의 사고만도 1백13건에 6백30가마나 된다.

<「조」로 묶은게 탈>
이같이 대부분의 사고가 리동조합장들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에 대해 관계실무자들은 각종 자금 등 비료를 쓰는 조합원인 농민 개인적으로는 현물 담보 능력이 없는데다 신용도가 낮아 어쩔 수 없이 이들 농민들을 조(조)로 묶어 놓았기 때문에 리동조합장 상대가 불가피 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은 농협이 좀 더 성의있는 자세로 직접 각 농가에 파고들어 비료·영농자금등을 알선 회수해 리동조합장의 손을 거치는 절차없이 직접 거래를 바라고 있다. <김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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