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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경상거래와 자본거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60연대의 외환수급은 경상거내 적자를 자본거래 흑자로 메우는 불건전한 바탕위에서 외환보유고의 증대만을 기해온 것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추세는 61년부터 68면까지 8년 동안 경상거래가 도합 6억9천8백만불의 적자를 누적해온 반면, 자본거해는 9억4천3백만불의 흑자를 기록, 총체적으로 보아 2억4천5백만불이 외환보유고에 가산된 것으로 입증된다.
이 경향은 60년대를 결산하는 69년에도 지속되어 지난 10월말 현재 경상거래는 수입 8억8천만불, 지급9억8천7백만불로 1억7백만불의 적자를 나타냈고 이를 수입 1억2천6백70만불, 지급 5천9백80만불로 6천6백90만불의 흑자를 기록한 자본거래가 「커버」했다.
따라서 64년 말에 1억2천8백90만불로 사상최저를 기록했던 외환보유고가 69년10월말에는 5억2천1백60만불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사상 최초로 60년대에 5억불 이상의 보유고를 기록했다고 기뻐할 수만 없는 것은 이것이 정상적 무역의 호조에 힘입어 이룩된 것이 아니라 현금차관을 비롯한 각종 외채도입으로 구성된 빚더미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60년대의 우리나라 무역은 한번도 역조를 시정해보지 못한 적자의 누적이었다. 경제규모확대에 따른 무역량승가는 당연한 현상이나 무역량증가가 곧 무역역조확대를 뜻하는 우리나라 무역구조는 70년대에 해결할 급선무 중의 하나다.
무역역조는 61년 수출4천2백90만불(이하결제베이스)에 수입1억60만불로 5천7백70만불의 적자였으나 68년 말에는 수출4억6천4백90만불, 수입11억3천4백40만불로 6억6천9백50만불의 적자를 기록했고 69년10월말에는 수출4억8천20만불, 수입8억2천7백20만불로 이미 3억4천7백만불의 적자를 시현, 심화일로에 있다.
결국 수출은 61년 4천3백만불에서 68면 4억6천5백만불로, 수입은1억불에서 11억3친4백만불로 10배 이상이 증가했지만 절대액으로는 수출4억2친2백만불, 수입은 10억3천4백만불이 늘어나 우리나라 무역남조가 잦는 근본적 취약성을 개선하지는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은 무역역조는 64년의 월남파병이후 무역외수입이 호조를 보여 61년에 1억7백80만불의 흑자가 68년에는 2역9천6백70만불까지 확대 됨으로씨 경상거래자체의 적자를 어느 정드 축소시켜왔다. 물론 무역외수입이 호조었다 해도 경상거래의 대폭적인 적자를 차관도입 등에 주도된 자본거래(10월말 현재 확정 현금차관만도 62년이후 1억8천2백만불) 흑자가 보전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외환은 이미 파산선고를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즉 우리나라의 상품수출 신장률은 62년부터 66년까지 연평균 44%, 67년 33·7%, 68년 후 45·3%, 69년 44% (계획치) 라는 괄목할만한 것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 만큼 수입 절대액이 왜소한데서 출발했기 때문이며 금년의 7억불 수출목표달성을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수출신장의 한계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해마다 저하하는 수출가득율도 수출증가에 내재하는 큰 문젯점이다.
IMF(국제통화기금) 당국은 우리나라 외환구조의 취약성을 지적, 『외지의존도를 줄이고 내자동원에 보다 주력』하도록 요망하고 대외원리금상환부담이 국제수지의 앞날에 암영을 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외환구조의 적신호는 바로 이점에 있다.
일시적으로 외환보유고가 증가했다 해도 그 내용이 대외채무의 누적인 이상 70년대에 닥쳐을 원리금상환을 위해 빚이 빚을 끌어들이는 악순환의 우려가 짙은 것이다.
특히 월남전이 끝나면 무역외수입도 60년대 보다 감소될 요인이 있는 만큼 무역역조시정은 초미의 급무로 등장하고 있다.
즉 60년대가 무역적자를 자본도입으로 일관해서 지탱해온 10년이었기 때문에 70년대는 그 대외채무상환의 무거운 짐을 안게 되는 것이다.
이는 70년대가 특별히 국제수지면에서 시련기임을 의미한다. <현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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