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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남의 일이 아니다|박천식 (서울고법판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모녀가 길을 가다가 두 손님을 태우고 과속으로 달리던 「택시」에 딸이 치여 중상을 입었으나 비정의 운전사는 뺑소니를 쳤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모녀는 당황한 가운데서도 멀어져가는 차의 번호를 외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들의 고발 정신은 차의 번호를 절반씩 외었다가 맞추게되어 비정의 운전사는 쇠고랑을 차게 되었다.
모녀는 달아난 운전사가 나쁘다는 것은 말하것도 없지만 그 차에 타고 있던 손님들의 고발정신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그러운 마음씨』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남의 잘못을 보고도 못본체 하는 것이 신사의 몸가짐으로 생각하고 심지어는 범죄를 보고도 외면을 하기가 일쑤인 것이다. 자신의 안일만을 생각하는데서 생긴 이런 습성은 민주시민으로서의 고발정신을 무시케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수개월전 친구 한사람이 당한 일이다. 그 친구는 만원「버스」속에서『도둑이야!』라는 소리에 소매치기를 잡으려고 앞에 불쑥나온 손을 잡는다는 것이 피해자의 손목을 잡아 오히려 소매치기로 오인을 받았다.
경찰서까지 연행되었던 그 친구는 다음날 아침에야 겨우 혐의가 풀려 석방되었다는 것이다.
먼저 이야기는 자기를 태워준 운전사를 차마 어떻게 고발하겠느냐는 미덕(?)의 마음씨에서 나온것이며 뒷이야기는 고발정신의 과잉에서 온 결과로 생각된다.
물론 먹고살기도 힘든 세상인데 남의 일에 뛰어들어 고발이나 하게되면 경찰이나 검찰에 증인으로 불려다니고 법정에까지 서게될지도 모르니 우선 귀찮고 나중에 어떤 보복이나 받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서 남의 불행을 목격하고도 외면하는 수가 많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누구나 혼자 고립되어 살수없고 남이 잘 살아야 나도 잘 살수있다는 협동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절도와 강도같은 사건을 심리할때 이해관계없이 법정에 서게 되는 증인을 위해 우선적으로 신문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흉악범의 면전에서 『저 사람이 진범』 이라고 증언하는 그 증인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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