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매치기범 쫓다 숨진 장세환씨 기억하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고(故) 장세환씨의 11주기를 맞아 22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학군단 건물 앞에서 아버지 장기효씨가 아들의 추모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구윤성 인턴기자]

2002년 7월 22일 오전 2시 서울 안암동 고려대 교우회관 앞. 이 학교 행정학과 4학년 장세환(당시 26세·작은 사진)씨는 중앙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숙소인 학교 앞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장씨 앞에서 걸어가던 한 남성이 갑자기 옆 여성의 핸드백을 낚아채갔다. 장씨는 달아나는 소매치기범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는 길 건너편으로 달아난 범인을 쫓아 도로를 건너다 승합차에 치여 사망했다.

 장씨의 의로운 죽음이 알려지자 학교 게시판에는 추모글이 이어졌다. 학사 장교(ROTC)로 복무한 고인을 기려 학군단 건물 앞과 그가 숨진 고려대역 라이시움관 앞에 ‘장세환 추모비’가 세워졌다. 장씨는 그해 보건복지부에 의해 의사자(義死者)로 선정됐다.

 22일 오후 4시 고려대 학군단 건물 추모비 앞에 고려대 교직원 10여 명이 모였다. 장세환씨가 숨진 지 꼭 11년이 되는 날. 아버지 장기효(69)씨와 어머니 허지희(63)씨도 자리를 함께했다. 추모비에 적힌 아들의 이름을 한참 동안 지켜보던 장씨는 “우리 아들을 잊지 않고 10년 넘게 챙겨줘서 학교에 고맙다”고 말했다. 옆에 선 어머니 허씨는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당초 추모식에는 재학생들이 참석을 희망했으나 아버지 장씨의 만류로 교직원만 자리를 지켰다.

 11년 전 아들의 죽음 이후 장씨 부부의 삶은 달라졌다. 듬직한 첫째 아들을 잃은 직후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어머니 허씨는 11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큰 아들의 어릴 적 사진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큰아들의 의로운 죽음과 남은 두 아들을 생각해 힘을 냈다”고 말했다. 부부는 아들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방안을 찾다 장학사업을 하기로 했다. 2002년 받은 의사자 보상금 1억4400만원과 사비를 털어 5억4000만원을 학교에 기증했다. ‘장세환 추모 장학회’의 시작이었다.

 장씨 부부는 최근 서울시에서 의사자에게 지급한 특별위로금 전액(3000만원)을 추가로 장학회에 기탁했다. 특별위로금은 지난해 서울시가 제정한 ‘의사상자 예우에 관한 조례’에 근거했다. 이혜정 서울시 복지정책과 주무관은 “조례 시행 후 의사자 가족이 위로금 전액을 기부한 건 처음”이라고 전했다.

 아버지 장씨는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곧 은퇴할 예정이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아들의 뜻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선뜻 위로금을 내놨다. 그는 “어차피 아들 장가갈 때 쓸 돈을 아들의 후배를 위해 쓴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기증을 계기로 세환이 장학회가 더 활기를 띠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 허씨 역시 “생전에 못 해준 걸 생각하며 눈 감을 때까지 아들 이름의 장학회를 잘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 올해까지 장세환 추모장학회의 혜택을 본 학생은 61명이다. 올 1학기 전액 장학금(433만원)을 받은 김경민(21·여)씨는 “이번 학기 장학금이 없었다면 휴학할 뻔했다”며 “추모식엔 참가하지 못했지만 마음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