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골프도 윗분께 물어보고 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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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윤호
논설위원

골프만큼 긍정과 부정의 양극단으로 시선이 엇갈리는 스포츠가 있을까. 한쪽에서 골프는 인생이라고 찬미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반(反)서민의 상징이자 부패의 진원지로 폄하한다. 우리 사회에선 부정적 시각이 분명 더 우세하다. 골프 치는 사람들을 ‘골프 동맹’이라며 마치 악의 축이라도 되듯 바라보는 학자도 있다. 소수 지배층이 골프장에서 노닥거리며 세상을 주무른다는 뜻이다.

 서민들이 하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드는 운동인 데다 업자와 유착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니 그렇게 볼 법도 하다. 골프가 접대로 변질되고, 이게 부패의 고리가 될 수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골프는 공직자들이 멀리해야 할 악행처럼 비치곤 한다. 골프를 치느냐, 안 치느냐가 공직윤리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통한다. 때론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하고, 여기에 잘못 걸려 신세를 조지기도 한다.

 그 관행은 이번 정부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팽팽했던 올 초 일부 군 간부들의 골프장 출입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한마디 한 게 바로 골프 금지령이 돼버렸다. 지난달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이 이제 골프를 좀 칠 수 있게 해달라고 박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을 보면 금지령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다. 박 대통령은 얼마 전 주요 언론사 논설실장들과의 간담회에서 공직자 골프와 관련해 “지금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공직자들이 골프를 치도록 풀어줄지, 계속 못 치게 묶어둘지 고민 중이라는 뜻으로 비쳤다.

 그러다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이 최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골프에 대해 두어 가지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휴가 때 꼭 치고 싶은 사람은 문제가 되지 않을 사람과 자비로 쳐도 된다, 그리고 웬만하면 필드보다는 스크린골프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는 내용이다. 조건부 해금인 셈이다.

 그런데 한번 따져 보자. 공직자들의 골프가 과연 대통령과 그 비서실장이 언급할 만큼 중대한 국사인가. 대통령이 고민하고, 비서실장이 가이드라인을 내려줘야 할 정도의 사안인가. 아니면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그리도 한가한 자리인가. 박사학위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공직자들은 자신이 골프를 쳐도 되는지, 치지 말아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할 능력도 없나. 그 같은 타율적 의식으로 어떻게 국정을 수행하나.

 또 이번에 허 실장이 내놓은 지침이란 것도 뭐 대단한 내용이 아니다. 밥 먹기 전에 손 씻고, 잠 자기 전에 이빨 닦으라는 말처럼 개인위생 수준 아닌가. 이쯤 되면 다음엔 국산 골프채 쓰고, 수수한 골프웨어 입고, 타수 정확히 세라는 훈령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골프에 대한 청와대의 과민반응은 결국 부패에 대한 걱정인 셈이다. 하지만 구제불능의 부패 공직자라면 금지령 아니라 계엄령에도 어떻게든 몰래 칠 것이다. 정 안 되면 다른 접대를 받고 잇속을 챙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공직자 골프를 막는 금지령도, 골프장에서 공직자 출입을 체크하는 감찰도 다 행정낭비다. 부패나 유착은 다른 방법으로 막아야지 골프장 길목을 지킨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 자체가 전시행정이다.

 골프 치면 부패한 기득권층이고, 안 치면 양심적이고 청렴하다는 인식도 참 우습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해찬 전 총리도 골프를 쳤다. 그뿐인가. 세상 바뀌었다고 386 운동권 골퍼들이 희희낙락 그린을 누비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 북한에도 골프장이 있고, 김정일도 쳤다지 않나. 그 정도 겪어봤으면 골프를 굳이 핏발 서린 눈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자기 분수에 맞는 여가라면 비행기 조종을 하든, 골프를 치든 무슨 상관인가. 공직자들의 취미는 꼭 독서나 바둑이어야 하나. 위선의 가면은 벗어던지자.

 그래도 미심쩍어 계속 눈치를 살피거나, 구질구질하게 물어보고 치려면 골프채일랑 아예 분질러버려라. 그런 식으로 쳐봤자 즐겁지도 않고, 잘 맞지도 않는다.  

남윤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