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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숙 장관 “유인화” … 中 반발에 한발 물러서

중앙일보

입력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한·중 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발언이다.”

지난 5월 8일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이어도에 연구원들을 365일 상주시킬 계획”이라고 발언한 직후, 중국 관리가 외교부에 이런 항의를 해왔다. “경계가 확정되지 않은 해역(이어도)에 일방의 국가(한국)가 독점적으로 (관할권을 확대)하는 건 안 된다”는 항의도 추가됐다.

외교부에선 비상이 걸렸다. 박 대통령이 각별한 공을 들여온 한·중 정상회담(6월 27일)이 임박한 시점에 중국이 이런 압박을 해왔기 때문이다. 외교부와 해수부의 긴급 협의 끝에 우리 정부는 중국 측에 “(이어도에 대해) 그런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된 바 없다”는 해명을 전했다. 그래선지 한·중 정상회담에선 이어도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그 뒤에도 이어도 문제에 관해 압박 수위를 높이는 형국이다. 최근엔 이어도 주변을 순찰하는 중국 해경 함정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한다.

지난 4월 19일 해수부가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내년 상반기 중 ‘해양영토관리법’을 만들어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EEZ) 관리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서도 중국의 눈길은 곱지 않다. 영토가 아니라 ‘해역’인 영해와 EEZ를 ‘해양 영토’라고 호칭한 건 이어도를 영토로 간주하고 영유권을 주장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중국이 지난 9일 국무원 내 14개 부처에 흩어져 있던 해양 분야 기구를 통합해 ‘국가해양국’을 만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또 우리 해경에 해당하는 ‘중국 해경대’를 설치해 중무장 전투함과 1만5000명의 인력을 배치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의 해경대 창설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또 이어도에 대해서도 관할권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이달초 ‘국가해양국’ 만들어
제주도 서남쪽 해상에 위치한 이어도는 주변국 가운데 한국 영토에서 가장 가깝다. 마라도에서 149㎞ 거리다. 이에 비해 중국의 가장 가까운 섬과는 247㎞나 떨어져 있다. 해안선으로부터 200해리(370.4㎞)까지 인정되는 EEZ를 기준으로 하면 중국도 관할권을 주장할 수는 있지만 인접국과 EEZ가 겹칠 경우 적용되는 국제해양법의 ‘중간선’ 또는 ‘근거리 우선’ 원칙에 따르면 이어도는 당연히 한국의 관할 해역(EEZ) 안에 있다.

다만 이어도는 평균 해수면 4.6m 아래에 있는 수중 암초(reef)여서 유엔 해양법상 ‘영토’가 아닌 ‘해역’에 해당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정부도 “이어도 문제는 영토 문제가 아니다. 중국과 경계선 협정을 하면 자연히 (한국으로) 귀속될 대상 해역”이란 입장이다.

그래서 윤진숙 장관의 ‘유인화’ 발언은 우리 해역인 이어도를 우리 ‘영토’라는 뉘앙스로 표현해 문제였다는 지적이 학계와 외교부에서 나온다.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해 1996년부터 17년간 난항을 겪고 있는 한·중 EEZ 경계협상이 계속 공전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4월 19일 해수부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무인 체계로 운영돼온 이어도 기지를 단계적 유인화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했던 윤 장관이 기자간담회(5월 8일)에서 발언 수위를 높여 ‘유인화하겠다’고 얘기한 게 중국 측의 외교적 항의를 불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간담회에서 윤 장관은 “이어도를 유인화하면 중국과 갈등이 우려되지 않겠나”라는 질문에 “영토 개념이 아니라 과학기지 개념이라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부 관계자는 “윤 장관의 발언은 중국엔 ‘이어도 영유권을 강화하기 위해 유인화하겠다’는 뉘앙스로 들렸을 것”이라며 “또 ‘365일 상주’ 같은 말은 중국에 ‘이런 대단한 계획을 발표하는 걸 보면 영유권을 고착화하겠다는 의도’란 의심을 품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해양법 전문 법학 교수도 “해수부가 이어도에 인력을 1년 내내 상주시켜도 국제법상 이어도는 암초(해역)일 뿐 영토로는 전혀 인정받을 수 없다”며 “해수부가 ‘해양영토’라는 국제법상 존재하지 않는 개념을 부각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경계 협상 속히 마무리해야”
해수부 측도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해수부의 한 관계자는 “이어도 기지에서 사람이 지낼 수 있는 한계는 1주일이고 겨울철이나 태풍이 불 때는 그나마 어렵다. 365일 유인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윤 장관도 “이어도 관할권을 강화하겠다고 한 건 기지의 활용도를 높일 방안을 강구해보자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고 그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해수부는 ‘관할권 강화’ 대신 ‘활용도 확대’에 초점을 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중국이 의심하는 ‘해양영토관리법’에 대해서도 “‘해양영토’란 말이 국제법 용어가 아니어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명칭을 ‘국가관할해역관리에 대한 법’으로 바꿀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어도가 엄연한 우리 해역인 만큼 제3국의 관할권 침해에 단호히 맞서되 조속히 중국과 EEZ 경계협상을 마무리해 국제법상 확실한 우리 해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흥규(중국정치) 성신여대 교수는 “일제의 독도 강점은 러시아 견제 의도에서 동해의 전략거점(독도)을 강탈한 것”이라며 “이어도 역시 중국이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전략거점으로 보고 있어 관할권 주장 근거를 우리보다 훨씬 많이 축적해온 것으로 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국력이 높아지면 이어도 확보 시도도 강해질 것이어서 한국 입장에선 중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하되, 다른 영역에서 중국의 이익을 보완해주는 선에서 경계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암석을 섬이라고 주장하며 영유권이나 경제해역 분쟁을 빚는 사례는 전 세계에서 40여 곳에 이른다. 이어도 동쪽 276㎞ 해상에 있는 ‘오키노토리시마(沖ノ鳥島·중국명:충즈냐오자오ㆍ沖之鳥礁)’가 대표적이다. 침대 두 개 넓이에다 만조 때 최고 높이가 해발 70㎝에 불과한 이 암석을 일본은 ‘섬(시마·島)’이라 부른다. 하지만 중국은 ‘산호초’라는 뜻의 ‘자오(礁)’로 부르며 이런 주장을 일축한다. 일본은 88년 이 암석에 300억 엔을 투입해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고 헬기 이착륙장을 세웠다. ‘영토’(섬)란 명분을 쌓으려는 의도다. 하지만 유엔해양법상 섬으로 인정받으려면 사람이 살 여건을 갖춰야 한다.

중국도 암석을 영토화하려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군도·南沙群島)에 있는 ‘융수자오(永署礁)’는 중국에서 1037㎞ 떨어져 있고, 만조 때 최고 높이가 60㎝에 불과한 소형 암석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곳에 해군 관련 시설물을 건설했다.

강찬호, 전수진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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