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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식강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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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체코」자유화의 기수「두브체크」는 당중앙위에 의해 또다시 강등되었다. 당제1서기→연방의회의장(당간부회「멤버」)→당중앙위원. 이것은 지난4월이후 「두브체크」에게 주어진 「데스컬레이션」 수식이다. 「두브체크」를 그나마 「스텝·바이·스텝」으로 한자리씩 물러 앉힌 것은 그가 남겨놓은 『자유의 지열』때문일 것이다. 「체코」국민의 「두브체크」에 대한 경의와 열망은 아직도 식지않고 있다. 「체크」의 청년들은 그의 이름을 「자유」의 대명가로 부른다.
지금 「체크」를 휩쓸고있는 숙청바람은 두말할 것도없이 소련식의 그것이다. 가까이는 「흐루시 초프」의 일을 회상할수 있다. 「흐루시 초프」의 사임은 『노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공식화되었지만 그것을 완전히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바로 자신의 비판파들에 의해 축출되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들 말한다. 바로 그 반복에 의해서 「흐루시초프」두 「두브체크」도 쫓겨났다.
「흐루시 초프」는 한때 당중앙위에서 「몰로토프」 「말렌코스」 「카바노비치」등을 몰아 냈었다. 바로 그 본중앙위는 하룻밤사이에 「흐」를 내쫓았다. 당시 무려 4시간의 연설을 통해 「흐루시초프」를 통렬히 비판한자는 「미하일·수슬로프」였다. 그 바로 몇 시간전 까지만해도 그는 「흐루시초프」의 「이론적 지주」였으며 중공과 이론투쟁를 벌인 기수였다. 「그가 쫓겨난 바로 다음날, 소련의 최고간부회의장직에 앉은 「미코얀」도 그렇다. 역시 「흐」의 오른팔이었다.
우리는 오늘 바로 「체코」에서 그와 똑같은 「역사」를 보고 있다. 「두브체크」강등에 앞장선 「후사크」는 소련침공 이전만해도 조심스럽게 「두브체크」의 인기에 편승해 있었다. 「체코」대통령 「스보보다」는 「두브체크」이상의 열의로 자유화를 지지했었다. 그들은 오늘 무엇을하고 있는가.
더구나 「두브체크」가 「실정」의 책임을 질수도 없는 일이다. 만일 그것이 실정이었다면, 바로 「스보보다」도, 「후사크」도 연대책임을 면할 길이없다.
공산사회의 「추방」은 어느나라이든 냉혹과 잔인의 그것이다. 거기엔 우정도, 인정도 없다. 더구나 동정은 생각도 못할일이다.
「체코」국민은 워낙 비장하고 ,과묵한 신사풍의 성격들을 갖고 있다. 그들은 서로 신뢰하며, 혈맥이 통하는 「페이더스」의 국민들이다. 그러나 소련식의 「비정적 숙청」은 그들에게 다만 냉혹만을 요구하고 있다. 「두브체크」의 강등은 바로 자유의 강등을 의미한다. 지금 「체코」국민의 마음은 얼마나 비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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