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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프로] '한국의 종가' 방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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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姓)을 중시하는 한국 문화에서 종가(宗家)는 씨족 집단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생활이 서구화하면서 종가의 전통과 위상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

종가가 농경사회와는 짝을 이루지만 정보화사회나 산업사회와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지금 종가엔 젊은 사람이 거의 없다. 옛날처럼 종가를 지키고 종손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직장이나 도시의 삶을 버리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MBC가 17.18일 밤 11시에 방송하는 '한국의 종가'는 사라져 가는 한국적 전통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명문으로 꼽히는 퇴계(이황).학봉(김성일).운악(이함).고산(윤선도)의 집안을 중심으로 종가의 과거와 현재를 담았다. 이를 통해 전통을 어떤 방법으로 계승해야 할지를 묻는다.

'경상 감사 자리보다 퇴계 종손 자리가 낫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 종손이 사는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의 퇴계 종가는 지난 오백년간 영남학파의 구심점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명문으로 자리잡아왔다.

지금은 종손 이동은(95세)옹과 고향의 초등학교 교장을 지냈던 차종손 근필(72세)씨,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유학을 전공하는 차차종손 치억(29)씨의 삼대가 지키고 있다.

4년 전 종가의 큰 살림을 맡아보던 종부(宗婦)가 세상을 떠난 후 퇴계 종가의 시급한 과제는 치억씨의 신부감을 찾는 일이다. 하지만 종가라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결혼이 쉽지 않다.

이 프로그램은 유림의 구심체로 권위의 상징이었던 종가가 일제 하에는 독립운동의 중심에 섰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퇴계의 제자이자 영남학파의 거두였던 학봉 김성일의 종가는 가족 30여명이 독립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 프로그램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종부의 역할을 조명한 점이다. 가부장적 문화로만 알려진 종가가 5백년의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바로 종부라는 것이다.

제작진은 가문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뛰어난 지혜를 발휘해 종가를 되살렸던 여인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 고산 종가의 경우 고산 윤선도.공제 윤두서.낙서 윤덕희 등 예술인으로 이름 높았던 조상들의 유물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데, 이는 종부들의 노력 덕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윤영관 PD는 "종가는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수십 집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나마 몇십 년 안에 자취를 감추게 될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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