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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감의 회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가을은 하루하루 깊어진다 .노변 꽃가게에는 「코스모스」가 만발하다 .붐비는 번화가의 한모퉁이에도 국화가 은은히 피어있다.
회색의 도회지에서,각박한 시간속에서, 모처럼의 맑은 햇살속에서 문득『한송이꽃을 발견하는 기쁨은 그지없다 .그 청향에 이르러서랴!
도시의 가을은 꿈인둣 잠결인 듯 몽롱하게 찾아온다 .어느날,잠결에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고,바람은 한결 선들거리기 시작한다.「시멘트」틈바귀에서 혹은 마루밑에서 가을은 방울을혼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가을에도 꽃의 청향과 ,방울을 울리는 벌레들이 있는가 .자연은 실로 언제나 신비롭고 경이로운 것은 아닌것 같다 .마옴이 어두운데 ,무엇인들 밝겠는가.
거리의 모퉁이마다 기동경찰이 서성댄다 .학교들은 하나·둘 교문을 닫는다. 꽃의 눈부신색깔을 압도하는 그 전투복 잡풀만 무성한 교정들. 가을은 공허한채 빈수레를 끌고 지나간다.
비정의 계절은 도심뿐만이 아니다. 최근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는 변두리 판잣집 주민들은노변에서 이 공허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찬이슬은 그만두고, 다가올 겨울은 어쩌려나.
가을을 잃은 사람은 그러나 또 있다. 하룻밤새 집이 쓰러지고 곡식이 떠내려간 삼남의 주민들.
이제 추분이 지나면 밤은 한발짝씩 길어진다. 하루낮의 짧은 시간, 아쉬운 해빛은 그들의나날을 더욱 숨이차게 할 것이다.
우리에게 계절을 찾아줄자는 없는가. 정치과잉의 현실은 천재에 앞서 우리의 계절감을 앗아가 버렸다. 「라우드·스피커」의 그것처럼 우리의 귀를 메워주는 그 소음들. 우리의 가슴에서 등불올 끈 그 충격들. 가을은 발붙일곳도 없이 문전에서 서성거리며 우리를 더없이 쓸쓸하게 만들어 주었다.
『사람은 가을의 정신을 가지고 내몸을 단련해야 할 것이며 ,봄의 정신을 가지고 남을 대해야 할것이다.』(중국고담에서)
지금이야말로「가을의 정신」「봄의 정신」을 차릴때이다. 위정자는 우리의 계절을 되돌려주는일에 일념해야 할 것이다. 계절감의 회복! 그것은 가을에 정신을 차리는 「정상의 왕도」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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