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초두 X선 찍으니 흙앙금 속 활자 드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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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자(證道歌字)’가 처음 공개된 건 2010년 9월이었다. 경북대 남권희(57·문헌정보학) 교수가 “금속활자 12점이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보물 758호)』(이하 『증도가』)의 글자와 서체·크기 등이 일치한다. 13세기 고려활자로 추정한다”고 밝히면서다.

 남 교수는 이들이 현존 최고(最古)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直指)』(1377년)의 간행 시기보다 138년 이상 앞선 실물 활자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교과서를 바꿀 대발견이라는 평가는 그러나 위작일 가능성이 있다는 반발에 부딪혔다. 고려시대 금속활자가 담겼던 청동초두와 수반(水盤·대야)을 X선 촬영한 결과 그릇 바닥에 남아 있는 흙에서도 활자가 드러나는 등 이후 3년간 고려 금속활자는 총 112개가 공개됐고 관련 연구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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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자에 묻은 먹으로 연대 측정=맨 처음 결정적 단서가 된 건 ‘밝을 명(明)’ 자였다. 증도가자는 왼쪽의 ‘날 일(日)’ 변이 ‘밭 전(田)’자 모양으로 돼 있어 조선시대의 글자와는 구분된다. 옥정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김성수 청주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등 여러 서지학자들이 남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유혜선 국립공주박물관 학예실장 등은 “금속은 탄소연대 측정이 불가능하다. 금속활자는 출토지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연대를 측정할 과학적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진위 논란은 2011년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활자에 묻은 먹을 탄소연대 측정한 결과 13세기 초의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이 추가로 두 활자를 분석한 결과도 1150~1300년으로 나왔다. 경북대 신소재공학과 예병준 교수는 활자 형태 등을 분석해 ‘주물사 주조법’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의 논문도 발표했다. 고려활자는 ‘밀랍 주조법’으로 제작됐다는 기존 학설을 뒤엎는 내용이었다. 또 청주대 김성수 교수는 지난해 9월 국제학술대회에선 증도가자가 『증도가』는 물론 『동국이상국집』(1241년), 『고금상정예문』(1234~1241년)을 인쇄하는 데 쓰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세 책의 서체와 조판 방법이 마치 한 사람이 한 것처럼 일치한다는 것이다.

 현재 금속활자 100여 점 중엔 증도가자 60여 점 외에 형태가 다른 두 가지 유형의 활자가 포함돼 있다.

 남 교수는 “증도가자의 일부는 만들어놓고 사용하지 않은 발전된 형태의 새 활자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고려활자에서 조선활자로 이행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오래된 유물 특유의 청동 녹”=이번에 공개된 청동초두와 청동수반도 증도가자가 ‘진짜’라는 근거에 힘을 보태준다. 이오희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회장은 “청동 기물의 형태나 부식 정도로 보아 고려시대 것이 확실하다. 초두 손잡이는 청동을 보호하는 좋은 녹이 슨 데 반해 몸체 부분은 청동병이라 불리는 하얀 녹이 슬었다. 오랜 기간 묻힌 청동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흙과 먹가루·검댕 등을 조사하면 좀 더 상세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적 차원의 본격 연구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소장자가 2011년 10월 문화재지정 신청을 했지만 그간 두 차례 열린 문화재위원회에서 ‘보류’ 결정을 내렸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현재로선 금속활자 조사·연구에 배정된 예산이 없다”고 말했다.

 ◆구텐베르크 활자와 직지=1455년 인쇄된 독일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는 현존하는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직지 대모’ 박병선(1929~2011) 박사가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있던 고려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1377년 인쇄본)을 세상에 알리면서 한국은 금속활자 종주국으로 인정받게 됐다. 증도가자는 『직지』보다 130여 년 앞선 금속활자라는 점에서 ‘활자강국’ 한국의 위상을 재확인시키고 있다.

이경희 기자

바로잡습니다 고려 금속활자 ‘증도가자’로 인쇄 된 것으로 거론된 세 책 중 『고금상정예문』은 실물이 없어 추정일 뿐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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