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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능가하는 방과후 논술 수업 졸업생 멘토가 학습·진로 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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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휘문고는 2013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서울대 33명, 연세대 52명, 고려대 35명을 합격시켰다(중복합격자·재수생 포함).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을 골라 뽑을 수 있는 전국 단위 자율형사립고(자사고)나 특목고가 아닌 일반고로서는 매우 우수한 실적이다. 휘문고는 2011년 서울지역 자사고로 전환했다. 자사고 기준에 맞춰 선발한 학생들이 올 연말 처음으로 대입을 치른다. 학교 관계자는 “앞으로 5년 내에 과학고나 전국 단위 자사고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휘문고 2학년 학생들이 수학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 분위기 좋기로 유명한 학교답게 졸거나 딴 짓 하는 학생은 찾기 어렵다.

10일 오후 2시 휘문고 강당에 학부모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2014 수시 대비 입시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휘문고는 올 한 해 학부모 대상 대입 설명회를 일곱 번 넘게 개최한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대입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마이크를 잡은 신종찬 휘문고 진학부장은 “요즘 대입은 정보력 싸움”이라며 “학생과 학부모 모두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합격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이런 학부모 설명회가 휘문고의 주요 전략 중 하나다. 학부모와의 스킨십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거다. 신동원 교감은 “학교는 학부모에게 최대한 많은 서비스를 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며 “학부모·학생을 모두 만족시켜야 좋은 학교”라고 말했다. 휘문고가 홈페이지에 최근 9년 간 대학 진학 실적을 공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학 실적이 좋든 나쁘든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학부모가 신뢰를 바탕으로 학교를 위한 쓴소리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휘문고는 학부모 의견을 적극 수렴하는 학교로 유명하다. 내신 시험 방식을 개선한 것도 그중 하나다. 이 학교는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한때 1, 2학년이 한 교실에서 시험을 봤다. 1학년이 사회, 2학년이 수학 시험을 보는 식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쉬운 과목을 시험 본 1학년 학생 중 일부가 문제를 빨리 푼 후 엎드려 자 시험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문제가 생겼다. 2학년 학부모로부터 ‘시험 때 집중하기 어렵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학교는 바로 다음 시험부터 어려운 과목끼리 묶거나 아예 따로 시험을 치르는 방식으로 문제를 개선했다. 다른 많은 학교가 강압적인 자세로 학부모 요구사항을 무시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휘문고의 강점은 이외에도 또 있다. 내신 시험과 수리논술 수업이다. 모든 학교가 다 보는 내신 시험이 뭐가 특별하길래 강점이라는 걸까. 핵심은 문제 난이도다. 다른 많은 학교 학생들은 내신을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한다. 시험 때 벼락치기로도 충분하다고까지 여긴다. 하지만 휘문고에서는 이런 게 통하지 않는다. 특히 수학은 대치동 학원가에서도 어렵기로 유명하다. 자연계열 2학년 윤성진군은 “문제를 푼 사람보다 찍은 사람이 더 잘 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라며 “교과서 복습하고, 기출문제와 교재 여러 권 풀어도 좋은 점수 받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의 쉬운 시험 출제 방식과 완전히 거꾸로인 셈이다. 이유가 뭘까. 신 교감은 “내신과 수능이 개별적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며 “2013학년도 수능에서 휘문고가 언어·수리·외국어 1, 2등급 비율 36.6%로 서울시 일반고 1위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노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능은 물론 대학별 논술 시험에 나왔던 문제를 변형시켜 내신 시험에 출제하기도 한다. 사실 수학뿐 아니라 대부분 과목이 그렇다. 올해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물리 시험에서 27점 받은 학생이 전체 340명 중 200등을 했을 정도다. 30점을 못 맞은 학생이 150여명이나 되는 셈이다. 이런 난도 높은 시험은 학습 긴장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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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사고는 중학교 졸업 내신 50% 이내 학생이 모이기 때문에 특목고만큼 내신 경쟁이 치열하다.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생각이 학생들의 집중력을 높여 자연스레 심화학습을 하도록 유도한다. 인문계열 2학년 김민규군은 “시험이 아무리 어려워도 100점 맞는 사람은 꼭 있다”며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자극 받아서 공부 시간을 늘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방과후 과정인 수리논술 수업은 인근에 소문날 정도로 유명하다. 1학년 때부터 학기중과 방학 기간으로 나눠서 하는데, 참여 학생수에 따라 보통 4~6개 반을 개설한다. 1, 2학년 때는 교과 과정과 연계한 내용을 다루고, 3학년 때는 대학별 논술 기출문제를 풀며 실전감각을 익힌다. 입학 후 지금까지 모든 수리논술 수업에 참여했다는 자연계열 2학년 김동우군은 “논술뿐 아니라 수학 심화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라며 “1학년 때 수열을 배웠다면 논술시간에 수열의 수렴발산 여부를 판정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지난 겨울방학 때 1학년 대상으로 개설한 반은 모집 시작 3초 만에 마감됐다. 윤성진(2학년)군은 “학원 다니는 것보다 학교 수리논술 수업이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경쟁률이 너무 높아 이번 여름방학에야 처음으로 듣게 됐다”고 말했다.

기대가 높은 만큼 수리논술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의 책임이 막중하다. 매주 한 차례 진행하는 수업을 위해 교사 5명이 1주일에 적게는 3~4시간, 많게는 15시간을 투자한다. 우창영(진학팀장) 수학교사는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문제를 찾기 위해 대학 교재나 수학저널 같은 다양한 서적을 참고한다”며 “힘든 일이지만 학생의 실력이 향상되는 모습을 보면 밤샘 피로도 날아간다”고 말했다.

  졸업생 멘토링 프로그램도 잘 돼 있다. 학교 측은 매년 3월 그 해 졸업한 학생들을 학교로 부른다. 수험생을 위한 멘토를 연결해주기 위해서다. 멘티들은 이런 시간을 통해 자신이 진학하고 싶은 학교나 학과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한다. 한창 예민할 때라 교사보다 선배 조언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신 교감은 “서울대 화학과를 꿈꾸는 학생이 슬럼프에 빠져 있으면 서울대 화학과에 진학한 선배를 소개시켜 주는 방식”이라며 “선배와의 대화를 통해 슬럼프를 극복하는 걸 많이 봤다”고 말했다. 중학교 시절 게임 중독이었다 고등학교에 와서 성적을 향상시킨 끝에 올해 서울교대에 진학한 정대준씨가 유명한 멘토 중 하나다. 그에게 꾸준히 상담을 요청하는 후배 수가 30명이 넘을 정도다. 인문계열 2학년 김동주군은 “대준이 형이 학교에 와서 한문 학습법 등을 반 애들에게 알려줬는데, 그 다음번 시험에서 우리 반이 전교 1등을 했다”며 “좋은 선배를 만날 수 있는 게 휘문고의 힘”이라고 말했다.

 휘문고는 자율학습실 분위기가 좋기로 유명하다. 졸업생 정대준씨가 사교육 없이 전교 3등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자율학습실의 힘이 컸다. 오전 7시부터 밤 12시까지 운영하는데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감독한다.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교사가 감독할 때는 학생들이 모르는 해당 과목 문제를 질문한다. 정씨는 “수업 끝난 뒤 바로 야자실(야간자습실)에서 공부하니 흐름이 끊기지 않고, 친구에게 자극도 받고, 교사에게 과외 받을 수 있어 일석삼조(一石三鳥)”라며 “교장·교감·부장 선생님도 자주 방문해 응원해줘 입시 지옥을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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