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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날개 돋친 듯 팔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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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불황에도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제품이 있다. 무조건 싸다고 잘 팔리는 건 아니다. 품질은 비슷하면서도 가격은 반으로 내린 실속형 특가상품이 불경기에도 ‘날개 돋힌 듯 팔리는 효자상품’으로 꼽힌다. 스트레스를 먹고사는 탈모시장도 호황이다. 청년실업이 늘면서 젊은 소비자층 수요까지 가세했기 때문이다.

 상인들의 시름을 달래 주는 ‘날개 돋힌 듯 팔리는 효자상품’은 현실에선 좀처럼 만나 보기 어렵다. ‘날개 돋친 듯 팔리는 효자상품’으로 바루어야 한다. 돋아서 내밀다는 뜻의 동사는 ‘돋치다’이다. ‘돋다’에 강조의 의미를 더하는 접사 ‘-치-’가 붙은 꼴이다. “무덥고 습한 날씨 때문인지 일명 냉장고 바지·치마가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다” “나쁜 소문일수록 날개 돋친 듯이 퍼져 나가기 마련이다”와 같이 사용하는 게 바르다.

 널리 쓰이는 “가시가 돋히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공격 의도나 불평불만이 있다는 뜻의 “가시가 돋다”를 강조해 이르는 말로 “가시가 돋치다”고 표현하는 게 옳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가시 돋힌 말을 던져 동심에 상처를 주는 건 삼가야 한다”처럼 사용해선 안 된다. ‘가시 돋친 말’로 고쳐야 한다.

 우리말엔 ‘돋히다’란 동사는 없다. ‘돋히다’는 “해가 돋다” “밥맛이 돋다” “나뭇가지에 싹이 돋다” “온몸에 소름이 돋다” “얼굴에 생기가 돋다”와 같이 쓰이는 ‘돋다’에 피동을 나타내는 접사 ‘-히-’가 붙은 형태인데, 이런 말은 성립할 수 없다. ‘돋히다’라고 하면 남에 의해 내가 돋음을 당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돋다’는 자기 스스로의 작용에 의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피동 접사 ‘-히-’가 붙을 수 없는 말이다.

 요즘은 인터넷상이나 청소년 사이에서 ‘돋다’를 큰 감명을 받았거나 심리상태에 격한 변화가 있음을 고백하는 말로 거리낌 없이 쓰는 경향이 있다. “소름 돋다”에서 착안한 어휘로 “스타일 돋는 옷차림” “미모 돋는 배우” “동안 돋네”처럼 사용하지만 이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표현으로 삼가는 게 좋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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