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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미래애인추적기의 씁쓸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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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규연
논설위원

이번 주 사이버 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 일어났다. 개그콘서트에 잠깐 소개된 인터넷 사이트에 네티즌의 관심이 갑자기 몰린 것이다. 접속 폭주로 사이트는 사흘간 다운됐다. 운영자는 나흘째 되는 날 다른 서버로 사이트를 옮겨 겨우 임시 개통했다. 포털의 인기검색 순위에도 이틀간 수위에 올랐다. 네트워크 사회에서 가끔씩 발생하는 예상하지 못한 쏠림현상, 창발(創發)이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사이트 이름이다. 미래애인추적기. 이름을 입력하면 앞으로 만나게 될 연인의 직업·매력·학력·혈액형 등이 나온다. 황당하게도 휴대전화번호와 첫인상까지 뜬다.

 정부가 미래창조를 강조하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미래에 쏠린 걸까. 얼마 전에는 ‘미래에서 온 편지’ ‘천국에서 온 편지’ ‘귀신에게서 온 편지’ 등의 사이트가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이름·성별·생년월일을 넣으면 미래의 자신이 이런 식의 편지를 보내온다.

 ‘어느덧 니가 52살이 되었겠구나. 느리다면 느리고 길다면 긴 시간… 나는 2040년 급작스럽게 인생을 마감했다…79년간 겪어보고 생각한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중요하다는 점이다. 2040년의 이규연이.’

 선진국일수록 미래에 관심이 크다. 미래 관련 보고서를 가장 많이 내는 대륙은 단연 유럽이다. 다른 모든 대륙을 합쳐도 유럽의 절반 이하다. 영국·독일·핀란드·스웨덴·네덜란드가 그 중심지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앞서 있다. 모두 정밀한 사회시스템을 갖춘 국가다. 예측을 뒷받침할 데이터·방법론이 짱짱하고 새로운 내일을 만들려는 욕구가 큰 나라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부지런히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뜻하지 않는 미래에 자신들이 먹힐 수 있음을 안다. 그렇다면 믿거나 말거나 사이트의 유행을 선진국의 징후로 봐야 할까.

 한국 사회의 미래 대처 방식은 유럽의 선진국과 무척 다르다. 우선 너무 단정적이다. 몇십 년 후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고, 어떤 산업·기술이 출현할 것이라는 식의 ‘하나의 미래’를 찾는 데만 열중한다. 그래서 다양한 미래를 그려내지 못한다. 예측방법 역시 엉성하다. 제대로 된 과학적 방법론이 정립되지 않은 탓이다. 한국인의 미래관은 근시안적이기도 하다. 수혜자가 다음 세대나 후임자가 돼야 함에도 자신이 자리에 있을 때 당장 효과를 보려 한다. 이명박정부에서 ‘미래기획’위원회가 학원 규제 같은 초단기 정책에 매달린 사례도 있다. 그러다 보니 미래연구를 몽상이나 구상유취(口尙乳臭)로 대하는 시각도 여전하다.

 역대 미래 예측의 성공 모델로 에너지 기업인 셸의 사례가 꼽힌다. 이 회사는 1960년대 말 미래학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석유 값 동향을 내다보는 연구소를 만든다. 그때 유가는 고작 배럴당 2~3달러를 밑도는 상황이었다. 연구소는 데이터와 국제정세를 꼼꼼히 분석해 몇 개의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그중 하나가 몇 년 후 유가가 10배 이상 뛸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시나리오 공표 이후 연구소는 조롱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1973년 오일쇼크가 온다. 시나리오가 있었기에 셸은 중동발 혼돈에 잘 대처할 수 있었다. 당시 셸 연구소가 개발한 시나리오 방법론은 지금도 유용하게 쓰인다.

 새 정권 출범 이후 정부와 기업에서 미래 관련 조직이 생겨나고 있다. 셸의 사례는 미래 예측·설계의 기준을 제시한다. 하나가 아닌, 풍부한 가능성을 내다보는 것이다. 비웃음을 살 만한 스토리도 관심영역에 두어야 한다. 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정교한 예측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후대를 고려해 앞날을 짜야 한다. 이를 통해 몽상의 땅에서 미래를 끄집어내야 한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도 이제는 진지한 눈으로 내일을 바라봐야만 할 때가 된 것 아닌가. 미래애인추적기 현상을 보며 재미만이 아닌, 씁쓸함을 느낀다.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