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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죽음의 「정글」을 뚫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베트공」들은 가끔 마을을 통과할때 저희들끼리 암호를했다. 암호는 주로 『여자가 아기를 낳는다』등 좀 긴 대화가많아서 그들끼리의 암호조차제대로 주고받지 못하는때가 많았다. 그럴때마다 장교들은 『이새끼들아 암호도 제대로 못하느냐』고 꾸짓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호송을 책임맡은 「안·머이」란자는 꽤많은 포로호송수당을 받는듯했으나 도시 우리를위해 쓰지않고 여자 「베트콩」과 히히덕거리며 놀아나는데 소비하는것같았다. 심심하면여자 「베트콩」들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안꼬버쩌」(결혼했느냐)고 물으며 친절을 베풀기도했고 태권도를 한번 시범해보라고 조르기도 했다.

<너는 꼭 죽여줄테다>
「안·머이」는 내가 차고있는 시계를 유심히 보더니 어느날주위에 아무도 없을때 자기의 헌시계와 내시계를 바꾸자고 제의해왔다. 사실 난 그때시계같은 것에는 아무런 미련이 없었으나 놈의 행동이 얄미워 단연히 거절하고말았다. 그래선지 그 뒤로 놈은 우리를 몹시 구박했다. 나는 채씨에게 『도망할때는 저놈을 꼭 죽이고 달아나자』고 다짐했다. 행군도중 가끔 미군 「팬텀」기의 기총사격을 받았다. 그럴때면 우리는 「베트콩」들과 함께 주변의 방공호에 숨어들곤했는데 수십명이 조그만 구덩이 같은 방공호에 들어가 한시간 이상 폭격을 피하고 있을때는 꼭 질식할것만 같았다.

<베트콩촌에 월남기>
어떤 큰 개울을 배로 건넌 우리는 다시 잡초가 무성히 우거진 아슴푸레한 황야를 걸어야했다. 넓은 황야에 드문드문자리잡은 촌락에는 노랑바탕에 빨간줄 세개가 줄쳐있는 월남정부기가 높은 장대에 매달려있었다. 그것은 주민들이 미군의 폭격이나 「헬리콥터」공격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황야를 걷는 행군은 「정글」길 못지않게 고통스러웠다. 우리 포로뿐만 아니라「베트콩」들도 더위에 지쳐 허덕허덕했다. 지리했던 황야를 지나고보니 또 큰 강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 강을 건널때 한「베트콩」이 무심결에 『깜보찌아』(캄보디아)라고 소리치는 것을 듣고 나는 재빨리 주변이 「캄보디아」와의 국경지대라는 것을 눈치챘다.
국경지대여선지 그곳에는 미군비행기도 날지 않았다. 강을 건너 약5백m 전진했을 때 눈앞에 야자수처럼 생긴 「캄보디아」고유의 사탕나무밭이 보였다. 그곳에서 밤을 새웠다.

<회색군복의 월맹군>
그 이튿날 아침결에 우리는 약 2km쯤 더 들어갔다. 그곳에는 거지움막같은 막사에 「베트콩」5백여명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여자 「베트콩」과 남자「베트공」들이 한막사에서 15명씩한데 어울려 지내고 있었다. 「베트콩」들은 강건너 바로눈앞의 「캄보디아」부락 상인들과 서로 물건을 사고 팔곤했다. 밤이면 검은 물소 두 마리가 「베트콩」들의 군수물자를 가뜩 싣고 어디론가 나르는 모습이 보였으며 수많은 남녀월맹정규군들이 줄지어 지나가는 광경도 보였다.
월맹군들은 회색군복과 회색모자를 쓰고 제각기 솥가마나 남비같은 식사도구를 등에 메고다녔다. 내가 본 그곳의 월맹군은 대부분 앳된 여자군인과 40대의 늙은 군인들인것으로보아 정예부대는 아닌성 싶었다. 강하나건너서 국경지대에는 새까맣게 탄 「캄보디아」어린이들이 갈고리로 평화롭게 가물치를 잡고있는 정경이 보여 이쪽나라사정과 대조를 이루고있었다.

<"채씨 지금이 찬스요">
드디어 나는 탈출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느꼈다. 「캄보디아」로 뚫고 나가면 태국에로 빠져나가 그리운 조국에 돌아갈수있으리라고 판단했기때문이었다. 나는 채씨에게 다가앉아 『지금이 탈출할수있는 절호의「찬스』라고 역설했다. 그때 채씨는 몹시 불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탈출에 한번 실패한 그는 「베트콩」의 감시에서 도망치는것이 도저히 불가능한것으로 여기고있었다. 나는채씨에게 『내가 하는대로만 따르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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