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군·무슬림형제단 유혈충돌 … 최소 42명 숨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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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시위 도중 총상을 입은 시민이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이날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이 구금된 것으로 알려진 공화국 수비대 병영 앞에서 무르시를 지지하는 시위대와 경비 병력이 충돌해 최소 42명이 숨지고 500여 명이 다쳤다. [카이로 로이터=뉴시스]
이상언 특파원

이집트 군과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축출에 반대하는 시위대 간 충돌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집트 보건당국과 무슬림형제단 등은 8일 새벽(현지시간) 무르시가 구금돼 있는 공화국수비대 병영 앞 충돌로 최소 42명이 숨지고 50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3일 군의 개입 후 무르시 찬반 세력 간 양보 없는 대립이 이어지던 이집트는 이번 사건으로 더욱 혼란의 수렁에 빠지게 됐다.

  친무르시 시위대는 전날부터 카이로 북동쪽 동나스르시티에 있는 수비대 병영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이들 중 상당수는 무르시 정권의 핵심 지지 기반이던 무슬림형제단 단원이었다.

 충돌 과정에 대한 증언은 엇갈린다. 무슬림형제단에 따르면 당시 연좌시위를 벌이던 시위대가 새벽기도를 올리려고 시위를 멈춘 사이 느닷없이 무차별 총격이 날아왔다. 시위를 벌이던 알라 엘하디디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군이 실탄과 산탄, 최루탄을 쐈다”고 BBC에 말했다. 군이 저격수까지 동원해 실탄을 조준 사격해 시위대의 머리와 목, 가슴에 총탄이 명중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알자지라 방송은 사망자 중엔 생후 6개월 된 아기 등 어린이 5명과 다수의 여성이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반면에 이집트군 대변인 할레드 알카티브는 “무장 테러집단이 병영을 침탈하려 했다”고 국영매체를 통해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군 장교 1명과 시위자 5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알카티브는 “교전 과정에서 200명이 체포됐는데 그들은 무기와 실탄, 화염병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인근 자택에서 발포 현장을 지켜봤다는 주민 미르나 알헬바위는 “군이 시위대 해산을 시도하자 시위대가 인근 모스크 지붕에 올라 새총을 쏘기 시작하며 충돌이 시작됐다”고 블룸버그 통신에 전했다. 또 다른 시위자 마흐무드 알실리는 “군이 최루탄을 쏜 후 갑자기 민간인 복장을 한 무리들이 튀어나와 사격을 개시했다”고 AFP에 증언했다.

 부상 시위대들은 사건이 발생한 지점 인근 모스크에 마련된 임시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집트 국영TV는 피를 흘린 채 머리와 팔·다리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는 부상자들의 모습을 공개했다. 이집트 국기와 담요 등으로 덮여 바닥에 놓인 시신들도 보였다. 이집트 군은 사건 직후 카이로 중심부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 장갑차를 배치했다. 카이로 주요 거점마다 무장 병력을 배치해 삼엄한 경계를 폈다.

 군부가 3일 무르시를 감금하고 임시정부를 세운 후 시위대와 벌인 유혈 충돌은 이번이 최대 규모다. 지난 5일 ‘거부의 금요일’에도 무르시 찬반 세력 간 충돌로 최소 37명이 사망하고 1400여 명이 다쳤다.

 이 사건으로 찬반 양측 간 대립은 극을 향해 치닫게 됐다. 무르시의 의회 내 지지 기반이었던 자유정의당은 군의 발포를 “탱크로 혁명을 훔치려는 폭동”으로 규정하며 “전 세계 단체와 자유 시민들이 나서서 학살이 계속되는 걸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슬림형제단도 성명을 통해 “혁명을 가로채려는 세력에 대항해 모두 일어서라”고 촉구했다.

 군부 쿠데타의 지지 세력 중 하나였던 누르당도 돌아서며 헌정질서 회복은 더 요원해졌다. 당 대변인 나데르 바카르는 이번 사건을 ‘학살’로 규정하며 “새 총리 선정 등 과도정부 구성 협상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했다.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인 누르당은 아들리 만수르 임시정부 대통령이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나 지아드 바하엘딘 의원 등 자유주의 성향 인물들을 총리 후보로 내세우려 하자 이에 반대하며 갈등을 빚어왔다.

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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