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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노사정 합의로 통상임금 모델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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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최승부
전 노동부 차관

지난해 3월 29일 대법원이 논란이 되는 판결을 내놨다. 통상임금 산정에 정기 상여금도 포함돼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경영계·노동계·정치권에서 우려와 논쟁이 제기되고 있다. 통상임금은 근로기준법 시행령에서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 금액, 일급 금액, 주급 금액, 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으로 정의된다. 대법원 판례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통상임금 산정에서 제외됐던 정기 상여금이 이에 포함됨으로써 임금 시효기간인 과거 3년간의 차액을 소급 지급하라는 소송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의 핵심은 상여금의 연간 지급률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고 이를 분기별로 나눠 지급한다면 이는 일률적·정기적·고정적인 급여로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상여금이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을 대상으로 지급되는 금품이라는 점을 근거로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을 뒤집는 것이다.

 사실 대법원 판례를 뒷받침하는 기본 법리는 이미 1996년께부터 정립돼 왔다. 다수 학설도 이에 찬성하고 있다. 따라서 통상임금이 어디까지냐는 논쟁은 비단 정기상여금뿐 아니라 다른 수당이나 복리 후생적 급여 항목에까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해법은 정부가 근로기준법이나 시행령을 개정해 통상임금의 정의를 보다 정밀하게 규정하거나 경영계가 스스로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획기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에 필자는 통상임금 문제에 대한 접근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우선 현행 근로기준법시행령의 통상임금 정의 조항을 통상임금의 본질에 어긋나지 않고 임금 실태에 맞추어 보다 정치하고 객관적인 요건과 기준이 명시되도록 개정한다. 둘째로 정부·노동계·경영계의 합의로 임금체계의 모델을 작성하도록 한다. 모델은 산업별 또는 업태별 특성과 연봉제·연공서열제·포괄임금제 등 임금체계의 형태에 따라 3개 내지 5개로 한다. 이때 급여 항목은 각각 그 설정하는 목적과 성격에 따라 통상임금에 포함될 일률적·고정적 급여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 성과 연동적·변동적인 급여로 분류해 그 조건 또는 기준을 상세하게 명시하도록 한다.

 셋째는 종전의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에 의해 통상임금에 해당하게 돼 있는 급여 항목은 유효하게 존속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만일 노사 간의 집단적 의사결정으로 이를 변경하기로 하는 경우에도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을 변경하는 외에 반드시 개별 근로자와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노사 자율적인 협약 또는 약정에 의해 임금체계 모델에 따른 통상임금 문제의 해결을 촉진하기 위해 근로자와 사용자에게 ‘조세특례제한법’ ‘법인세법’ 및 ‘소득세법’에 의한 조세 감면 혜택을 주도록 한다.

 이번 논란이 노사 간의 이해관계 등 갖가지 불합리한 요인으로 말미암아 비효율적이고 복잡해진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최승부 전 노동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