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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의 핵지대를 가다|모든 시설은 서부에|수소탄제조에 총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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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편집자주>호주의 「프란시스·제임즈」기자는 최근 서방기자로서는 처음으로 중공의 핵실험「센터」에 들어가 중공의 핵계획을 파헤쳤다. 중공의 「우라늄」 주산지로부터 핵실험「센터」의주조종실에까지 신강생의 구석구석을 돌아본 「제임즈」기자는 중공의 핵시설을낱낱이 관찰하고 이를 15일자 「선데이·타임즈」지에 기고했다. <런던·타임즈=본사독점전재>
중·소간 국경선6천4백km의 국경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고 그 중에서도 중공의 천산줄기 「일리」계곡은 가장 긴장이 고조되어있는 곳이다.
「일리」계곡은 서아의 소련공화국 (카자크스탄)과 중공의 신강성배부 「쭝가리아」를 잇는 요노로 이 곳에서 중공이 쓰고있는 모든 「우라늄」과 기름의 절반이 생산되고 있다.
나는 지난 3, 4월에 신강지성을 여행하면서 그곳에 있는 유전과 「투산츄」에있는 정유공장들을 돌아보았다.

<경비삼엄한 핵센터>
또 「롭·노르」에 있는 핵실험 「센터」도 볼 수 있었고 중공의 수소폭탄을 만드는 인물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수년 전 신강행을 여행한 바 있으나 이번에 새로 중공의 여행당국에서 용과사증을 얻어중공의 서배단에 있는 난주에 갈 수 있었다.
난주는 중공의 핵 「센터」로 경비가 아주 삼엄한 곳이었으나 이틀 밤을 그곳에서 지낼 수 있었다. 이곳에까지 온 서방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러면 중공은 왜 내가 이곳에까지 오도록 허가해 주었을까.
중공으로서는 내가 이곳에 와서 중공의 발전상황과 전비를 돌아본 후 소련과 서방자유진영에 그것을 알리도록 하려는데 그 의의가 있었던 것 같다.
이유야 어쨌든 나는 쉽게 요지와 요인들에 접근할 수 있었고 더불어 중공의 핵시설을 돌아보고 토론도 할 수 있었다.

<예상뒤엎을 핵계획>
만일 중공관사들이 나에게 설명해 준 것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중공의 핵무기계획은 서방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앞서있다.
그들의 세명을 들어보면 첫째 중공은 매년 수백개의 원자탄을 만들어 낼 능력을 가지고 있다할지라도 중공은 그러는 대신 열핵물질 또는 수소폭탄의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한 흰「가운」들>
둘째 중공은 난주북쪽 「알라·산」속에 「개스」원심분리기를 가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중공사람들이 서방은 아직 이론 단계 아직 실제 이와 같은 원심분리기를 생산하지 못하고있다고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세째 중공은 사정거리 6천마일의 「미사일」을 곧 실험할 것이고 또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모든 원자공장 및 시설은 중공의 서부지역 아니면 신강지성에 있다.
나는 강주에서 16km떨어진 곳에 있는 「개스」확산공장을 방문, 모두 하얀 「가운」을 입고 수많은 「다이얼」을 「체크」하고 있는 주조종실을 들어가 보았다.
이 공장은 15「에이커」쯤되는 터에 여러 동의 1층 아니면 2층회색건물로 되어있었다.
이 공장의 전기갈증은 황하입구의 수력발전소에 의존하고 있었다.
중공의 핵무기계획은 제7기계건설부 (The Seventh Ministry of Machine Building)의 총책 「니·충·첸」의 권한밑에 있다는 것이다.

<총책은 니·충·첸>
관사늘은 감숙성 「유멘」있는 한 공장에서 1년에「플루토늄」239를 3백kg씩, 내몽고에있는 「파오토」공장에서 30kg씩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열핵질생산의 첫 공장은 난주서쪽「칭가이」성에 있고 실험용핵무기공장은 난주서북쪽에 집결되어있으며 이곳에서 「노프노르」에 있는 실험장으로 무기가 운반된다.
「니」밑에서 중책을 맡고있는 「웨이·산·푸」박사는 중공이 지금까지 실시했다는 7번에 걸친 핵하험에 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에 의하면 제1회실험은 소련에서 얻은 「우라늄 을 사용, 지난64년10월16일에 했고 제2회의 65년5월13일과 제3회의 66년5월9일에는 비행기에서 투하하는 것이었다. 또 66년10월 하순에는 완전히 중공인들의 손으로 제작된소형「미사일」핵무기를 실어 발사했다.

<최대규모 5차실험>
지금까지 실험 중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제5회실험(66년12월28일) 이었다는데 「노프노르」에서 8백km나 되는 「타림」사막에 쏜 것이었다.
67년6월17일 제6회때는「리튬」6으로 중공에서 처음 생산한 3 「메가톤」급 수소폭탄을실험했다. 67년「크리스머스·이브」에 실시된 제7회실험이 실패하여 노동자 여러 명이 죽었다는 소문을 「웨이」는 거짓말이라 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실험을 「로프노르」에 있는 실험「센터」가 조정한다.
「노프노르」근교에는 큰 호수가 있으나 거기를 벗어나면 불모지대가 굉장히 넓어 「미사일」 발사대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경비는 삼엄. 「웨이」는 통신위성이나 U2기사건을 아무리 보아도 미국의 CIA는 어디에 진짜「로프노르」기지가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라 했다.
핵계획의 중요책인 「왕·칸·찬」에게 중공이 핵무기 및 「미사일」계획에 국민총생산고의 15내지 20%를 쓰고있다는 이야기를 건네 보았는데 그는 이 숫자를 부인하지 않았다.

<지쳐버린 유목민들>
신강행을 여행하는 동안 중공의 핵발전에 관해 취재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어떤 중요한것을 알게되었다.
정치적 충지대라 할 수 있는 중·중공국경분쟁지역의 유목민들은 중공의 핵무기문제와는무관하게 이제 지칠 대로 지쳐있다.
결국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린 유목민들은 그들이 영주할 주택 사회적 장을 위한다면 자유같은 것은 기꺼이 버릴 속셈이다. 국경분쟁에서도 신강성은 중공의 최후보루라 할수있다.<프란시스·제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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