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다 죽는것보다 어려운게 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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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13일 북핵문제 대처 방안과 관련, "미국과 다를 것은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盧당선자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 대등하고 수평적인 한.미 관계 설정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이날 발언은 이런 맥락의 언급 중에서도 수위가 가장 높았다. 자신의 미국.북한관을 단정적으로 노출시킨 셈이어서 향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盧당선자의 발언은 외국언론이 '미국과 盧당선자가 견해를 달리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데 대한 설명에서 시작됐다. 그는 "미국의 북한 공격 가능성에 대해 그건 안된다고 말했다.

이견이 하나도 없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북한에 더 퍼주더라도 투자를 해야 한다"고 했다.

북핵문제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손을 떠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넘어가면서 국제적인 군사.경제제재가 가해질 위기 국면에 선명히 선을 그은 것이다.

盧당선자는 심지어 "다 죽는 것보다는 어려운 게 낫다. 한국경제에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굳은 결심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북공격에 반대하다 한.미 관계가 악화하고, 미국의 자본이 빠져나가는 상황이 닥치더라도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렇지만 파장은 적지 않을 것 같다.

경제계는 한.미 갈등이 커질 경우 증시에서 외국자본이 빠지는 상황을 우려해 왔다. 이미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두 단계나 낮췄고 최근 방한한 유럽연합(EU).국제통화기금(IMF) 수뇌부도 북핵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더구나 북한 측이 "민족공조로 핵전쟁 발발을 막자"(노동신문 2월 9일자)고 주장하고 나선 상황이어서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방미특사단의 일원인 윤영관(尹永寬) 인수위 통일외교분과 간사가 "한국 젊은이들은 북한이 붕괴되면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것이므로 북한의 핵 보유보다 붕괴를 더 위험하다고 보는 인식도 있다"고 발언해 점차 반한 감정이 높아지고 있는 미국언론에 盧당선자 측의 견해로 와전돼 보도된 일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盧당선자의 발언은 미국의 매파를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盧당선자는 그동안 공.사석에서 '자주적 미국관'을 거듭 강조해 왔다. "盧당선자의 가장 큰 의문은 '왜 전시(戰時)작전권을 미국이 갖고 있는가'라는 대목"이라고 인수위 고위 관계자는 전했다.

이날도 "막상 전쟁이 나면 국군에 대한 지휘권도 한국대통령이 갖고 있지 않다. 다를 것은 달라야 하고 다른 것은 조율해 전쟁위기를 막아야 한다"고 평소의 생각을 표출했다.

또 盧당선자는 "경제력이 세계 13위인 우리가 왜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가", "주한미군 주둔 문제로 더 이상 미국으로부터 압박을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한 것으로 인수위 관계자들은 전했다.

공.사석에서 박동선(朴東宣) 사건과 로버트 김 사건 등을 예로 들며 한.미 간 역학관계의 문제점을 자주 언급하곤 한다는 것이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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