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송금 해법' 대타협설 해프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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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朴寬用.사진)국회의장과 여야 대표.총무 등이 13일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다. 대북 송금 해법을 놓고 여야가 대치 중이어서 뭔가 합의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모아졌다. 그러나 이날 모임은 아무 결론 없이 밥만 먹고 끝났다.

문제는 이날 오찬에 앞서 정치권에서 유포된 대타협설이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당선자 측의 문희상(文喜相)비서실장 내정자가 오전에 기자들에게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이라며 "어떤 방향으로든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말한 게 화근이 됐다.

朴의장은 오찬이 시작되자마자 "밖에서 이 자리가 역사적인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런 건방진 소리가 어디 있느냐"며 "과거 권력이 국회를 좌지우지할 때나 있을 법한 발상이며 여기 청와대에서 오더(명령)받고 온 사람이 있느냐"고 강력히 불쾌감을 나타냈다.

또 민주당 한화갑(韓和甲)대표와 정균환(鄭均桓)총무가 국회 상임위 차원의 해명 등 여권이 희망하는 해법에 대해 언급하자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대표권한대행과 이규택(李揆澤)총무는 "오늘 그 얘기는 못들은 것으로 하자"고 외면해 버렸다.

1시간30분간의 식사가 끝난 후 李총무는 "이런 식의 모임을 앞으로도 활성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북 송금 얘기는 피하는 분위기였다"고 잘라 말했다. 李총무와 鄭총무는 "인수위에서 미리 오늘 모임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것 때문에 더 잘 안된 것 같다"고도 했다.

당초 모임의 취지는 자연스러웠다. 민주당 韓대표가 자신이 원내총무 때 한나라당 총무로 카운터파트였던 朴대행에게 취임 축하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제의해 성사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朴의장이 "그러면 내가 밥을 사겠다"고 해 참석 범위가 커졌다고 한다. 약속이 정해지자 여권은 이 자리에서 '대북문제 여야 협의기구'설치 등의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를 전해 들은 朴대행이 "그렇게 부담스러운 자리라면 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朴의장의 설득으로 만났다고 한다.

결국 애써 성사된 모임이 당선자 측의 부적절한 예고로 '정치'는 사라지고 '식사'만 집행된 모양이 됐다.

박승희.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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