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리도 한국 사람] 上. 설땅 없는 혼혈인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금발에 파란 눈, 곱슬머리에 까만 피부. 이렇게 이방인의 모습으로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가진 한국인들이 있다. 혼혈아와 귀화 외국인들이다.

'배달민족''단일민족'임을 자랑하며 완고하기만 한 우리의 민족의식이 이들에게는 삶의 벽이다. 대부분은 늘 소외되고 고달프다. 그늘 속의 그들 모습,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길을 2회에 걸쳐 연재한다.

#지난달 28일 경기도 평택시 안중읍.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칼바람 속에 다양한 피부색의 주민들이 들녘의 비닐하우스로 향한다. 하우스 안에서는 펄벅재단 관계자들이 설날을 맞아 9㎏짜리 쌀 1백30부대를 각 가정에 나눠주고 있다.

대부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날품팔이를 면치 못하고 이곳까지 밀려온 혼혈인들이다. 권재덕(49)씨는 그저 "고맙다"는 인사만 연신 하고는 종종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지난달 초 뮤지컬 '렌트'공연이 열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막이 내리자 주인공 혼혈가수 소냐(23.김손희)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1980년 흑인 미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소냐는 떠나버린 아버지 대신 옆집 아저씨의 성을 따랐다.

학창시절엔 외톨이였고, 밤에는 공장에서 일했다. 타고난 노래솜씨로 여고생 가수로 데뷔, 큰 무대의 주인공이 된 소냐는 "혼혈아에겐 동등한 기회가 가장 절실하다"고 말했다.

◇늘어만 가는 혼혈 인구=아메레시안(미국계).라이따이한(월남계).코시안(동남아계). 비록 피부와 눈 색깔은 다르지만 '한국인'이다. 말도, 생각도 다르지 않은 우리 동포다.

1950~60년대엔 한국전쟁 이후 아메레시안이 주류를 이뤘지만 70년대에는 베트남전쟁에 따른 라이따이한, 90년대엔 동남아 노동자들이 몰려들면서 코시안이 급격히 늘고 있다.

혼혈인협회에 따르면 우리 주민등록증을 가진 코시안은 현재 1만여명. 90년대 5천명 정도이던 아메레시안도 2만명을 넘었다.

하지만 현실은 각박하다. 지난 12월 대선 때 서울 천호동 투표소를 찾은 백인계 혼혈인 정동권(53)씨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라는 말에 발이 얼어붙었다. 피부색 때문에 직장조차 구할 수 없었던 그는 투표를 마치고 나서 "그냥 울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코시안 김모(10)군은 '왕따'에 시달리다 자폐증까지 앓았다. 그러나 최근 경기도 안산으로 옮기면서 쾌활한 모습을 되찾았다.

◇이들에게 관심을=혼혈인협회 강필국(50)회장은 "각계 보조금마저 끊겼지만 그나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민들의 친근한 눈길"이라고 말했다. '돈'보다 '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혼혈인을 돕는 기관.단체는 너무 적다. 대표적인 펄벅재단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매년 1억2천만원씩 지원 받던 후원금이 올해부터 끊겼다. 한 기관에 3년 이상 지원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다.

오히려 미군부대가 관심을 더 쏟는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경기도 오산시 미군부대에서 혼혈아 송년행사가 열렸다. 이들은 모처럼 산타클로스 차림의 부대원들과 농구도 하고 연하장도 만들며 환하게 웃었다.

'코시안의 집'의 박천웅 목사는 "'살색'이란 색깔 표현도 이미 사라졌다. 단지 불우한 우리 이웃이라는 차원에서라도 경제적 지원과 사회적 기회 부여가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펄벅재단 02-871-6916, 혼혈인협회 02-470-0610, 코시안의 집 031-492-8785.

취재팀=이원호.이무영.백성호.손해용 기자

<llhll@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