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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배수진전|「이스라엘」서 본 중동위기|강요된 해결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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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는 외부열강이 중동문제에 관한 자신들의 해결책을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을 한사코 반대할 것입니다. 』=「골다·메어」수상.
『「아랍」과 「이스라엘」간에 최종적인 평화조약이 맺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지금의 점령지역으로부터 단 한치도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모세·다얀」국방상.
「메어」여사·「다얀」장군 「이스라엘」의 이 두영도자가 최근까지 거듭해온 이상의 선언들은 현재의 중동위기 전반에 관한 「이스라엘」 태도를 요약하는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양보는 죽음의 선택>
기자가 이곳 수도 「예루살렘」에 도착한 22일, 바로 「이스라엘」독립 제20주년의 기념대회에 모였던 수만의 관민들의 지배적인 「무드」는 오히려 「메어」수상이나 「다얀」국방상의 말보다도 더욱 전투적인 인상을 주었다.
자기들의 요구가 「아랍」제국들에 의해 수락되기 전의 어떠한 타협도 그것은 그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스라엘」의 굴복으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중동문제에 관한 협상관으로 돼있다.
1967년 6월전쟁의 승리의 감격이 아직도 새로운 그들에게 「굴복」이란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것으로 돼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의 기본적인 요구란 간단히 표현하면 우선 「아랍」 제국들이 「이스라엘」이란 국가적 존립을 하나의 엄연한 현실로 인정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일절의 적대행위의 포기와 「주권영토」 의 존중을 확약해야 한다는것이다.
앞으로의 어뗘한 협상도 이러한 전제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아랍」측은 이러한 확약을 거부하거나 또는 그보다는 우선 「이스라엘」군의 점령지로부터의 철군을 선행조건으로 내세움으로써 협상의 교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6월전쟁 직전 「나세르」의 말한마디로 「가자」지구에서 철수했던 「유엔」에 어떻게 그들의 생존의 보장을 바랄수 있느냐 하는 그들의 대 「유엔」불신은 말할 것도 없고 4대국회담에 대해서도 그들의 태도는 의구와 불신으로 특정지어져 있다. 무엇보다도 중동문제에있어 미국과 더불어 큰 영향력을 가진 소련은 공정한 평화의 확립보다는 자신의 영향권 확립이라는 것이 지상과제가 되는 것이고 따라서 4대국회담 같은 것도 이런 주목적에 종속되는 하나의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확신인 것같다.
이보다도 깊은 바닥엔 「아랍」권에 대한 그들의 뿌리깊은 불신과 그들의 생존의 터전을 확보하기 위해 6월승전이 가져다준 호기를 결코 헛되이 해서는 안되겠다는 절실감이 작용하고 있음도 물론이다. 아무런 대가없는 「이스라엘」군의 철퇴는 「아랍」 제국에 「이스라엘」말살을 위한 하나의 전진을 가져다 주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게 그들의 공통된 해석이기도 하다.

<대가없는 철군반대>
그들의 근본적인 중동현황관만 하더라드 소위 위기운운이란 군사적으로는 자기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한 「아랍」 제국들의 불안과 좌절감이 강대국의 도움을 받기 위해 만드는 「허구」라고 보고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랍」제국, 그리고 열강들이 「이스라엘」의 기본요구를 수락하기를 천명하기까지는, 그리고 「아랍」측이 「이스라엘」과 직접 담판을 청할 대까지는 현상이 어떠한 위기를 내포했건 어떠한 양보도 있을 수 없다고 그 자세는 마냥 강경하고 의연하기만 하다.
1967년 6월 소위 「6월전쟁」 후의 「이스라엘」의 모습을 아주 개괄적으로 표현하자면 자신에 넘쳐흐르고 있거나 나쁘게 말한다면 「도취돼」 있다고해도 괜찮을 정도다.
요사이 크게 보도되고 있는 홍해에 연한 휴전선에서의 전투도 그저 국지적 현상이고 또「이스라엘」의 압도적 위치가 유지되는 한 앞으로도 대수롭지 않은 국지적 현상으로 남을 것이라는게 이곳 지도층의 전망이다.

<압도적 군우세 유지>
사실 『중동에 전쟁상태가 실제적으로 재개돼 있다』고한 「우·탄트」 「유엔」 사무총장의 경고라든지 『우리는 더이상 휴전상태를 인정치 않겠다』고한 「나세르」「아랍」공화국 대통령의 거의 선전포고같은 선언도 「예루살렘」에서는 신문에 1단짜리 보도정도로 가볍게 처리돼 버렸다.
『큰소리 해봤자 문제는 실력이 해결하는 것이다』쯤의 인상을 보여주고 있는게 지금 「이스라엘」의 반응이다. 「이스라엘」의 자신을 뒷밤침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는 현실적 조건들은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 그동안의 군사력 재정비와 증강에도 불구하고 「아랍」군의 실력이 아직까지는 전면적인 대 「이스라엘」 작전을 효율적으로 벌이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은 중립적인 관측통들드 이의가 없는 사실이다.
둘째, 「시나이」반도, 「요르단」 강서안지구, 북쪽의 「고란」 고지 등 광대한 점령지역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아랍」권과의 육지접경은 6월전쟁전보다 줄어들었고 그것은 안보라는 면에서는 도리어 「이스라엘」에 유리해졌다는 것이다. 6월전쟁전의 접경선 거리는 9백80㎞였던 것이 .전쟁후는 6백50㎞로 줄었다.

<점령지 이스라엘화>
「6월전쟁」은 경제적으로도 「이스라엘」에 적지않은 이득을 가져다 주었다. 승전은 약3억「달러」의(주로미국의)해외자본투자를 「이스라엘」에 추가케 했고 1967년 1년간의 자본유입액은 7억8천만「달러」에 달했다.
새로 점령한 「시나이」반도의 유전으로부터는 지금 연5백t의 기름이 수출되고있고 「요르단」강 서해안지역으로부터는 약2만명의 값싼 노동력이 생겨 그동안 노동력 부족에 골머리를 앓던 「이스라엘」 경제에 새로운 활소구실을 해주고 있다. 또 「예루살렘」의 통일로 관광수입도 부쩍 늘어 이로인한 외화획득액도 연1억「달러」에 달한다는 통계다.
한편 「다얀」 국방상 등이 앞장서 점령지역에서의 행정일절, 법률, 통화 등의 「이스라엘」화내지는 동화를 주장하고 있는 사실들도 전후 「이스라엘」의 강경자세를 반영해주는 한가지 예로 들 수 있다.
이와같은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아랍」측이 대폭 양보의 용의를 보이지 않는 한 그리고 열강의 화평공작이 그리 미지근한 중재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이스라엘」이 순순히 타협을 위한 저자세를 보일 가능성이란 아주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박중희특파원<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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