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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다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붉은 저고리는 우리아동 교육에 적당한 보조기관이 무함을 개하여…』
이것은 1914년 8월호 「아이들 보이」에 난 「붉은 저고리」란 아동잡지 광고문 한 대목이다. 50여년전의 어린이 잡지 글투는 이랬었다. 「무함을 개하여」를 알아들을 어린이는 오늘날 하나도 없다. 마땅히 「없음을 딱하게 여겨」쯤으로 글을 다듬어야 할 것이다.
62년 전에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인 『혈의 루』나 『귀의 성』도 그분이 오늘날 붓을 들었다면 「피눈물」, 「귀신소리」라고 했을 것이다. 「춘래화개」가 「춘이 래하니 화가 개하다」를 거쳐 「봄이 오니 꽃이 피다」가 되기까지는 실로 60년이란 긴세월이 걸린 셈이다.
한문에 얽매여 지내고 일본어에 들볶이는 동안 우리말이나 글이 영양실조에 걸려 빼빼 말랐다. 8·15해방 뒤 제일먼저 서둘러야 할 것은 우리말을 쉽고 부드럽고 바르게 다듬기였다.
「뚝섬」을 「?도」라고 쓰면 알아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횡단로」「주차」「정지」따위도 「걸널목」「둠」「섬」하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자기자식을 낫춘 말인 「돈아」 (돈아)를 돼지새끼로 하자는 것은 아니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네』를 『4킬로도 못가서…』로 아리랑을 고치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서둘러야 할 것은 쉽게 말을 다듬는 일이다. 농촌으로 보내는 방송에서 「게스트·싱거」니 「가든·파티」니 하는 것보다 「노래손님」「뜰잔치」하는 것이 더욱 귀에 익지 않을까.
더구나 새로 지어내는 땅이름따위는 쓰기 쉽고 부르기 쉬워야겠는데 「여의도」를 「윤중제」라고 한 것은 당치않다. 차라리 「둘FP둑」이 낫지 않겠는가.
말을 다듬는데는 한자의 맛을 들인 어른들보다는 어린이를 기준으로 머리를 써야겠다. 국민교육헌장에 『후손에 물려줄…』했는데 일어의 「헤」(へ)나 영어의 「투」(to)와 달라서 사람에게는 「에게」이니 덜어내거나 줄이지 말고 제대로 「게」라를 한자 더 보태서 『후손에게』하는 것이 좋겠다.
더구나 어린이에게는 어려서부터 제말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버릇을 길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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