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미국 증시 폭락, 공황으로 이어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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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 지수는 10일 만에 1천3백60포인트가 빠졌다. 투매, 공황, 혹은 폭락이라고 불러도 좋을 상황이다.

사실 미국 증시는 지난 해 9월 11일 이후 상승세를 지속하다가 3월에 정점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후로는 줄기차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다우 지수는 25%, S&P 500은 27%, 나스닥은 32% 하락했다.

2000년 3월 이후 미국 증시 자본에서 7조7천억 달러가 빠져나가게 되자(지난 주에만 7천5백만 달러가 미국을 탈출했다!), 주식 매도가 미국 경제에 큰 타격을 주면서 경제 회복은 고사하고 현재의 일본이나 1930년 대의 미국 같은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몰고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런 불안은 매도를 낳고 매도는 더 큰 불안을 조성한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개입해 금리를 내려 사태 수습하는 방안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이렇게 한다면 시장 불안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1998년을 기억하라
아놀드 앤 에스블레이슈레더의 경제전략가 제임스 파디나는 "현 진행 상황은 낯설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 위기가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가 치솟던 1998년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파디나는 "그때는 정말 두려웠다"며 "지금 아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1998년 후반기 러시아의 부채 위기와 잘못된 판단으로 과도한 투기를 일삼은 헤지펀드들 때문에 세계 시장의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발생했다. 이것은 천천히 확산되는 공황이었다. 사람들은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더욱 악화됐다. 시장이 악화되면서 투자자들은 미국이 단순히 침체기로 빠져든다는 생각을 넘어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찾아오는 디플레이션 국면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세 차례 인하했다.

물론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지 않았다. 상처를 입은 것은 증시일뿐 경제가 아니었다. 실제로 이 기간에 경제는 급성장했다. 그리고 지금, 모든 지수들이 경제 성장을 예고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주가가 경제 회복을 방해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리먼 브라더스의 경제전문가 에단 헤리스는 "금융 위기가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라며 "이는 큰 위험이고 따라서 부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3월 이후의 주가 침체는 경제 성장률 1.5%포인트를 깎아내릴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 수치는 예상 성장률의 1/3을 까먹는 규모다. 따라서 시장이 계속 위축된다면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파디나는 "증시가 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사고방식은 주식에 너무 민감한 성향이 다분한 월가의 경제전문가들이 만들어 낸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한다. 경제를 살펴보면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판매와 산업생산은 호조를 보이고 있다. 최저치까지 떨어졌던 재고는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경제 수치들이 틀린 것으로 판명난다면 이는 경제 역사상 최대의 오류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악몽의 시나리오

에일투스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전략가 짐 그리핀은 파디나의 판단이 옳을 것이라는 데 비중을 둔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1998년보다 훨씬 악화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때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98년은 타인의 문제였다. 마치 다른 사람의 피가 내 바지에 튄 것 같은 상황이었다"라며 "이번에는 우리의 피가 발목까지 차올랐다"고 말했다. 현재 위기는 1998년과 달리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 주식 시장의 거품이 터진 것이다. 미국은 공격을 당했다. 그리고 미국의 최고경영자들은 장부를 조작했다. 1998년에 미국 투자자들은 세계를 관망하며 위기가 어디쯤에서 끝날까 궁금해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세계의 투자자들이 미국을 관망하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핀은 "일본처럼 미국에서 위험을 피해 자본이 철수하면 투자자들은 투자를 멈추고 은행들은 대출을 거부한다. 그렇게 되면 경제가 침체하는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세계 경제의 기관차 역할로서의 미국에 익숙해 있던 다른 국가들이 기준을 무시하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 또 1930년대 식의 자본주의의 위기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리핀은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 우리는 이틀 만에 다우 지수가 30% 하락했던 1987년 증시 폭락은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 보호 장치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가볍게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 그 일은 실제보다 훨씬 크게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은 불황이 온다고 생각했다.

파디나는 지금이 아직 그런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진행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심리적 공황이 자라고 있는 게 보인다. 1930년대를 들먹이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인하를 단행하고 저금리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때가 판단점이 될 것이다.

파디나는 "그 지점이 바닥이다. 연방기금 금리, 증시 등 모든 것의 바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Justin Lahart (CNN/Money) / 이인규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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