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46개사 "공장 설비 빼겠다" 북측 "방북해 협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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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3일 개성공단 진출 우리 기업인과 공단관리위원회 남측 관계자의 방북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4월 초 공단 통행제한과 북측 근로자 일방 철수 이후 현장접근이 어려웠던 기업인 등에게 장마철 긴급대책 마련을 위한 접근을 가능케 해주겠다는 의미다. 이런 입장은 전체 입주기업(123개) 대표들이 이날 오전 개최한 대책회의에서 46개 업체가 “공단 설비를 개성에서 빼내 국내외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겠다”고 북한과 우리 정부를 압박한 직후 나왔다. 이에 따라 3일로 가동중단 석 달째를 맞은 개성공단 사태 해결의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한은 오후 5시쯤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개성공단 북측 관리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총국장 이금철) 명의의 문건을 보내왔다. 북한은 “장마철 공단 설비·자재 피해와 관련해 기업 관계자들의 긴급대책 수립을 위한 공단 방문을 허용하겠다”고 강조했다. 공단관리위 관계자도 함께 방문해도 된다며 “방문 기간 필요한 협의들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공단 문제를 놓고 남북 간 협의를 벌이려는 의도를 내비쳤다.

 정부는 오후 7시 청와대에서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는 이런 일(북측의 일방적 공단 가동중단)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신중한 대응을 전달한 것으로 한 참석자는 전했다. 정부는 그동안 우리 기업인의 방북을 승인하지 않아왔다. 북한의 재발방지 약속 등 근본적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한재권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도 “이미 5월에 두 차례나 팩스를 보내 남남갈등을 조장한 적이 있기 때문에 북한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상황을 냉정히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언론브리핑에서 “여러 상황을 종합 고려해 대응책을 검토해 나갈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고민은 기업들의 고통이 심해지는 데다 상황변화도 있다는 점에 있다. 본격적인 장마철이 시작되면서 현지 설비와 자재가 녹슬거나 가동불능 상황이 되는 게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달 11일 당국회담 무산 이후 남북관계의 단절상황이 계속된 데 따른 부담도 있다. 북한이 당국회담 불발 직후 끊었던 판문점 직통전화를 이날 재가동하는 등 유화공세를 보인 점도 그냥 넘기기 쉽지 않다.

 박 대통령은 개성공단 사태 초기부터 체류 기업인의 식자재 공급중단이나 공단 내 완성품 반출 문제 등 직접 상황을 챙겨왔다. 정부는 관계부처 간 협의를 거쳐 이르면 4일 중 입장을 밝힐 방침이다. 여기에는 개성공단 사태를 보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영종·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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