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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기업인 "방북 제의 늦었지만 일단 다행" 환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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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개성공단 정상화 촉구를 위한 입주업체 비상대책회의가 3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강당에서 열렸다. 회의 도중 입주업체 대표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앞 줄 둘째부터 배해동·문창섭·김학권 공동위원장. 업체대표들은 4일 부산역에서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평화국토대행진 출정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김상선 기자]

3일로 폐쇄 석 달을 맞은 개성공단의 앞날이 더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북한이 기업인 방북을 허용하겠다고 나서면서 ‘잔류’와 ‘철수’를 둘러싼 입주기업들의 셈법이 더 복잡해진 것이다.

 이날 오전 개성공단 입주기업 123개사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책회의에서 기계·전자 분야 입주 업체들은 철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기계·전자 업체 46곳은 회의가 끝난 뒤 7층에서 따로 모임을 갖고 “정부 당국이 열흘 안에 공단 가동 여부를 결정해주지 않을 경우 공단 설비를 개성에서 빼내 국내외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설비의 국내외 이전에 필요한 조치와 지원책을 강구해 달라”고 촉구했다. 기계·전자 업체들은 대부분 투자 규모가 큰 데다 장마철 습기에 취약한 정밀기계 설비를 보유하고 있어 그동안 다른 업종들보다 적극적으로 사업 철수 여부를 타진해 왔다.

 이런 상황은 북한이 오후 5시 기업인 방북 허용이라는 카드를 내밀면서 반전이 이뤄졌다. 입주업체들은 일단 환영한다는 반응이다. 옥성석 나인모드(의류업체) 대표는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북한이 이제라도 기업인들의 방북을 허락한 건 천만다행”이라며 “장마철이 도래했기 때문에 최대한 이른 시간 내 개성에 가 설비시설을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기계·전자를 제외한 다른 입주업체들은 아직 공단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다. 신원 등 규모가 큰 기업들은 캄보디아와 미얀마를 새로운 생산처로 정했지만, 규모가 작은 대다수 기업은 개성공단을 대체할 생산지를 찾지 못한 상황이다. 몇몇 입주기업인은 “물론 북한이 잘못했지만 공단이 폐쇄까지 오게 된 데에는 우리 정부의 책임도 작지 않다”며 ‘정부 책임론’을 거론하기도 했다.

 기계·전자 업체들은 재발방지 약속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46개 업체들을 대표해 나선 김학권 재영솔루텍 대표는 “금형 장비는 이미 부식됐을 것이고 일반 생산설비도 상당히 많은 부분이 훼손됐을 것”이라며 “직접 상황을 확인해봐야 재가동이나 철수 어느 쪽으로든 결정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공단 재가동이 어렵다 해도 공장 설비만 국내외 다른 곳으로 옮기면 다시 공장을 가동할 수 있는 업체가 꽤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방북 성사 여부와는 관계없이 적지 않은 입주기업들은 사실상 철수 절차를 밟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단 폐쇄 등에 대비해 경협보험에 가입한 입주기업 96개사 중 65개 회사가 이미 보험금을 신청한 상태다. 한재권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가동도 못 하는데 인건비·사무실 유지비·대출이자 등은 계속 나가기 때문에 보험금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경협보험 약관상 보험금을 받은 기업은 공단 내 자산을 수출입은행에 넘겨야 하는데, 다시 공단에 입주하려면 보험금을 되갚아야 한다. 보험금을 되갚을 능력이 없는 중소업체들은 사실상 개성공단 철수를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재가동하려는 것인지, 단순히 남남(南南)갈등을 키우려는 의도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왔다. 실제로 북한은 5월에도 두 차례에 걸쳐 입주기업 40여 곳에 팩스를 보내 “완제품 및 원부자재 반출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을 이미 남측에 밝혔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당시 통일부는 “북한이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이번에는 방북 허용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 당시와 다른 점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입주기업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대응 방안을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정부에서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을 지내기도 한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는 “경협보험이나 특별지원금 등 개성공단 기업을 위한 조치들은 지난 정부 시절부터 충분히 준비했다”며 “북한의 의도를 먼저 확인하고, 인내심을 갖고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방북 여부 등을 논의하기 위한 비상대책회의를 개최한다.

글=김영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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