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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정무수석 자리 한 달째 비어있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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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달 3일 당시 이정현 정무수석이 홍보수석으로 임명된 후 지금까지 한 달가량 정무수석 자리가 공석이다. 사진은 지난 3월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지켜보는 청와대 수석들. 앞줄 왼쪽부터 허태열 비서실장·박흥렬 경호실장·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이정현 홍보수석. [청와대사진기자단]

3일은 청와대 정무수석 자리가 공석이 된 지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윤창중 스캔들’로 이남기 홍보수석이 물러나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3일 이정현 정무수석을 ‘구원투수’로 홍보수석 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후임 정무수석이 누군지 윤곽이 잡히지 않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이번 주는 넘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핵심 관계자는 “인선이 너무 늦어지고 있고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등 현안이 산적한 만큼 이르면 이번 주, 늦어도 다음 주에는 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발표 직전에야 주변에 알리는 박 대통령 스타일 때문에 주변에서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김학송·김성조·윤원중 전 의원 등 정치인 출신 3∼4명의 후보군이 박 대통령에게 보고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 일각에선 정무수석을 대신해 1인2역을 하고 있는 김선동 정무비서관의 승진 기용 가능성을 조심스레 거론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명박정부에서 임태희 의원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의원직을 내놓은 사례처럼 입법부를 구성하는 현역 의원이 청와대로 옮길 경우 의원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게 상식처럼 돼 있다. 이 때문에 현역 의원은 일단 후보군에서 제외된 채 주로 전직 의원을 중심으로 후보군이 거론되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친박 인사는 “청와대가 공천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인사 가운데 연륜이 있는 사람이 낙점되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이날로 정무수석 공백 한 달째를 맞은 청와대이지만 표면적으론 공백으로 인한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말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으로 인해 관심이 외교안보 분야에 쏠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무수석 공백의 장기화는 어떤 이유로든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때 청와대 정무수석은 사실상 ‘왕수석’이 맡던 자리로 인식돼 왔다. 군사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의 ‘의중’과 ‘돈’을 앞세워 여당을 컨트롤하고 야당 의원들을 회유하곤 했었다. 그러나 정치자금이 양성화되기 시작하면서 위상이 조금씩 떨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급기야 임기 중반 정무수석 자리를 폐지해버리기도 했다. 청와대 직제에서 사라졌던 정무수석을 부활시킨 건 이명박정부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무수석뿐 아니라 정부엔 비슷한 일을 하는 특임장관도 뒀다. 청와대 정무수석은 여당, 특임장관은 주로 야당을 상대로 활동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다시 정무기능을 대폭 축소시켰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와 정부를 통틀어 비교하면 이명박정부에 비해 정무기능을 담당하는 인력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상태”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명박정부에선 청와대 정무1, 2 비서관실 인력이 22명, 특임장관실 인력이 70여 명에 달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청와대 정무 1, 2비서관실을 통폐합하면서 인력을 여직원까지 포함해 9명으로 줄였다. 특임장관실은 아예 폐지했다.

 이명박정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 전 의원은 “정책도 따지고 보면 정무적인 성격이 있는 것”이라며 “정무수석은 정치적인 기능뿐 아니라 정책까지 총괄 조정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무수석이 없다면 누군가가 그 기능을 대신하겠지만 그 일의 양이 적지 않고, 정무수석실이라는 조직이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건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운영의 효율성이나 국정의 정상 운영 차원에서 오래 비워두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했다.

 김대중정부 시절 정무수석을 지낸 이강래 전 의원의 견해도 같다. 그는 “정무 기능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이야말로 국정운영의 주춧돌”이라며 “거기서 삐끗하면 나머지는 사상누각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무 기능은 일종의 공기 같은 것”이라며 “평상시에는 그 중요성을 잘 모르지만 어려운 일이 터지면 ‘그렇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고 부연했다. 김영삼정부의 이원종 전 정무수석도 “대통령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니까 어느 것이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현재 시스템을 봐서는 정무 기능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정무수석의 공백은 당·정·청 컨트롤 타워의 부재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남재준 국정원장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가 국정원의 방침을 까맣게 몰랐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 결과 새누리당에선 황우여 대표와 최 원내대표 간에 국정원 정국에 대한 대응 수위를 놓고 온도차를 노출하는 등 매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왔다.

 당·정·청 간에 미묘한 문제를 조율할 사람이 없다 보니 생긴 일이라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이 물밑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주변 의견을 두루 듣기보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정면 돌파해나가는 스타일이라 정무수석의 공백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지만 새누리당에선 정무수석의 공백이 장기화돼선 안 된다는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강태화·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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