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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숙제, 그리고 학부모 부담 없는 3無 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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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학교 옥상 하늘정원에서 태블릿 PC로 자료를 찾아보고 있다. 하늘정원은 다양한 식물이 사계절 알록달록한 옷을 갈아입는 친환경 공간이다.

서울 중구에 있는 동산초등학교는 치맛바람의 원조 학교다. 1966년 개교 후 극성 엄마들이 너도나도 이 학교에 애들을 보냈다. 강남이 본격적으로 뜨기 전인 70~80년대에 가장 공부 많이 시키는 학교였기 때문이다. 50년 가까이 지난 올해 현재도 이 학교는 여전히 엄마들이 보내고 싶어하는 학교다. 하지만 이유는 달라졌다. 공부를 많이 시켜서가 아니라 엄마가 일일이 챙기지 않아도 되는 학교, 또 인성교육을 제대로 시키는 학교라는 기대 때문이다.

동산초의 올해 신입생 모집 경쟁률은 영훈초등학교와 같은 4.7대 1로 서울 시내 39개 사립학교 가운데 상위 4위였다. 사립초 가운데서도 늘 가장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계성초와 영훈초 등이 최근 몇 년 동안 경쟁률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지만 동산초는 2010학년도 3.6대 1에서 오히려 매년 조금씩 오르는 추세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엄마 손이 덜 가는 학교라는 점이다.

 손상영 동산초 교감은 동산초를 “세 가지가 없는 학교”라고 소개했다. 첫째가 준비물, 둘째가 저학년 숙제·시험,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부모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동산초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에게 공책부터 연필, 지우개, 필통, 크레파스, 스케치북, 실내화 주머니, 양치 세트, 작은 손수건 등 학교생활에 필요한 모든 걸 제공한다. 전부 무료지만 다 쓴 걸 확인한 후 담임교사가 나눠주기 때문에 낭비는 없다고 한다. 엄마 입장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준비물 챙기는 스트레스가 없다. 직장맘 사이에 특히 인기가 높은 건 이런 이유가 크다.

 

동산초는 정규 체육시간에 ① 요트 ② 승마등을 가르친다. ③ 학생들이 손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학교 곳곳에 책을 비치해 둔다.

동산초 1, 2학년은 숙제와 시험이 없다.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또래 친구들과 즐겁게 놀며 학교가 즐거운 곳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다. 운동장에 있는 거북선 모양의 놀이공원도 이런 이유로 만든 곳이다. 학교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친구와 즐겁게 노는 곳이라 항상 가고 싶게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만 예외가 하나 있다. 바로 영어다. 영어는 1학년부터 수준별 수업을 하기 때문에 학기별로 한 번씩 영어 수준 평가 테스트를 한다.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손 교감은 “10년 동안 연구해 수준별 수업이라도 가급적 스트레스 없이 재밌게 배울 수 있도록 했다”며 “이제는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라 학생 수준이 평균적인 제 학년 수준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사실 4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 분위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과도한 숙제가 큰 부담이었다. 부모 도움 없이는 숙제를 마무리 짓지 못해 학업에 대한 흥미를 잃는 아이도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1, 2학년 숙제와 시험을 없앤 것이다. 고학년은 시험을 보지만 한 학기 동안 반편성고사·기말고사·수준별고사가 전부다. 손 교감은 “과거보다 공부량이나 숙제량을 줄이기는 했지만 아직도 일반 공립학교에 비해 공부량이 많다”며 “그러나 수업이 딱딱하지 않게 게임카드나 블루마블, 스토리텔링, 조별 수업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과거처럼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학부모 부담이 없다는 말은 뭘까. 일반 공립학교에서는 저학년의 교실 청소와 급식 도우미는 물론 교통 안전 문제까지 학부모가 도맡아 한다. 하지만 동산초는 이런 부담을 학부모에게 지우지 않을 뿐더러 현장학습을 갈 때 도시락까지 학교가 다 책임진다. 손 교감은 “스승의 날이나 어버이날 편지지까지 학교에서 다 준비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워킹맘이 아니더라도 촌지나 학교 봉사에 대한 부담 때문에 학부모 고민이 많은 걸로 안다”며 “동산초는 어느 학부모든 자녀 양육 이외의 고민은 하지 않도록 학교가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심 속 학교지만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교내 전체를 정원처럼 꾸몄다.

실제로 몇 년 전 스승의 날에 한 학부모가 카네이션을 학교로 배달시켰는데 학교는 전교생 학부모에게 ‘(꽃을) 마트로 되돌려 보냅니다’라는 문자를 돌렸다고 한다. 촌지는커녕 학부모에게 음료수 한 잔 받는 일이 없다고 학교는 설명했다.

 6학년과 2학년 남매를 둔 심희정(39)씨는“촌지 없는 학교, 교직원 자녀도 선발에서 떨어지는 학교, 부모 건의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학교, 아이들이 집보다 더 좋아하는 학교”라고 동산초를 설명했다.

 학부모가 학교 행사에 동원되는 경우도 없다. 물론 1학기에 학교교육설명회가 있고 여느 학교처럼 공개수업이나 학부모 교육상담 등은 있다. 6학년 학부모인 워킹맘 최광기(44)씨는 “일하는 엄마에게 편한 학교”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도록 대안학교를 고민했지만, 대안학교는 학부모 참여가 너무 많아 부담스러웠다”며 “동산초가 아이들 관리를 확실하게 해 아이가 동산초에 다닌 6년이 흡족했다”고 덧붙였다.

 학교의 이 같은 3무(3無) 정책은 과거 이 학교가 풍겼던 ‘극성맞은 학교’라는 이미지를 깨기 위한 것이다. 한때 이곳은 교육열 높은 학부모가 모인 탓에 치맛바람 센 학교로 유명했다. 양질의 교육을 제공한다는 원칙은 과거와 똑같지만 학업만 강조했던 것을 지금은 독서교육과 인성교육에 더 힘쓴다. 학교 환경도 이런 취지에 맞게 바꿨다.

 손 교감은 “학생들이 도심 속에서 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학교에서는 자연과 더불어 생활할 수 있게 교정을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바꿨다”며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학생을 바꾸려고 할 게 아니라 수업 환경과 학교부터 달라지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동산초는 국내 초등학교로선 처음으로 전자 칠판을 도입했고 태블릿 PC 수업을 하는 등 발 빠르게 교육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학업 수준은 어떨까. 지난해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국어 93.2%, 수학 93.2%, 영어 98.6%로 평균 95% 학생이 보통 학력 이상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사립초 가운데 27위 수준이다.

 동산초는 정규수업 시간이 일반 공립학교보다 많다. 1, 2학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6교시 수업을 한다. 3, 4학년은 수요일과 금요일 6교시, 월·화·목은 7교시까지 수업한다. 5, 6학년은 매일 7교시 수업이다. 독서·영어·수학·고전·중국어 과목이 정규 교과목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정규수업 시간이 긴 데다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도 직장맘의 마음을 사로잡는 부분이다. 방과후 프로그램은 대부분 예체능 관련 수업이다. 뮤지컬·K-POP댄스·로봇영재교실·축구교실·음악줄넘기·성악동요 등 20여 개의 강좌가 개설돼 있다. 이번 여름방학엔 영어동화반을 추가할 계획이다.

 돌봄교실도 저녁 9시까지 운영한다. 저학년 대상이기 때문에 대부분 오후 7시에는 부모가 아이들을 모두 찾아가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늦어지면 학부모가 직접 데리러 올 때까지 돌봄교사가 끝까지 돌본다. 돌봄교실에는 두 명의 담당교사와 보조교사, 대학생 동행 도우미가 워킹맘이 퇴근해서 아이를 찾으러 올 때까지 4~6시간 동안 숙제 지도를 하거나 같이 놀아 준다.

 동산초의 강점은 3무 정책에만 있는 게 아니다. 수준별 수업과 독서교육도 이 학교 자랑거리다.

 수준별 수업 가운데서도 특히 독립적인 영어 교육프로그램의 만족도가 높다. 2012학년도부터 영어교육 업체 정상JLS 교육과정을 도입해 수준별 영어교육을 하고 있다. 영어 전문 교실 12개에서 원어민 교사 6명과 한국인 교사 6명이 수준별로 수업한다. 영어 교실에서는 100% 영어로만 대화해야 한다. 1학년부터 수준별 수업을 하는데 주 6~7시간, 한 반은 최대 12명을 넘지 않는다. 원래 한 학급은 32명이지만 영어 수업은 이를 더 잘게 쪼개는 것이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18단계의 레벨로 나눠져 있는데 학년과 상관없이 알파벳을 모르는 학생부터 고교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갖춘 학생까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손 교감은 “가장 느리게 발전하는 학생이 1학기에 1단계씩 올라가는 경우”라며 “1학기에 1단계식 올라가도 졸업 때는 12단계 레벨이 되는데, 이 레벨은 중학교 2학년 수준”이라고 했다.

동산초 전경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 졸업생 중 가장 낮은 레벨 그룹의 아이들이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모두 각 학교의 상위권이었다고 한다.

 동산초는 영어 뿐 아니라 수학도 2006년부터 수준별 이동수업을 해왔다. 고학년을 대상으로 3~5레벨로 나눠 수준이 비슷한 아이끼리 공부한다. 학년별로 전교 하위 7명의 아이들은 개별 지도를 받는다.

 좋은 프로그램이 많지만 학부모가 가장 좋아하는 걸 꼽으라면 바로 고전 읽기 수업이다. 매달 한 권씩(방학기간 두 권씩) 같은 책을 한 반 아이들이 함께 읽고 고전독서록을 작성한다. 손 교감은 “동양고전은 인성교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며 “평소 고전을 읽으며 인성과 지혜가 삶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전읽기는 국어 교과가 아니라 주당 2시간씩 별도 수업시간으로 독립돼 있다. 학년별로 17권(1, 6학년은 16권)씩 총 100권의 고전작품을 읽고 졸업하게 된다.

 정규 체육 수업 시간에 포함되는 스포츠 교육도 훌륭하다. 1, 2학년은 1, 2학기에 각각 스케이트와 수영을 배운다. 3학년 2학기와 4학년 1학기엔 요트를, 5학년 2학기와 6학년 1학기엔 승마를 배운다. 겨울방학 직후에는 3학년 이상의 모든 학생이 2박3일간 스키교육을 받는다.

 이렇게 고급 스포츠를 배우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 것 같다. 하지만 학비는 수업료와 급식비, 외국어 교육비(영어·중국어), 스쿨버스비를 포함해 월 70여만원 선이다. 이와 별도로 요트와 승마는 학기당 10만원 선이다. 연 4회의 현장학습과 수학여행도 별도 비용을 내야 한다. 입학금은 100만원이다.

 3학년 학부모 원자승(39)씨는 “아이가 학교를 좋아해 공부를 즐겁게 하고 스포츠 교육까지 철저히 해 균형 잡힌 성장이 가능한 점이 맘에 든다”고 말했다.

동산초 6학년 학생들이 말하는 학교
“수준별 수업 때문에 주눅 드는 일 없어요”

-영어 수업은 어떻게 하나.

 “조별 게임 활동을 주로 해요. 스토리북에 나오는 단어를 찾거나 줄거리에 관한 질문을 하는 퀴즈 형식이죠. 답을 맞히면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만큼 포인트 도장을 받아요. 놀듯이 배우는 수업이에요. 1·2학년은 율동 위주, 3·4학년은 팝송을 소재로 공부해요. 5·6학년 때는 토론 위주의 수업으로 바뀝니다.”

-다른 학교와 다른 특별한 점이 있을까.

 “1학년 때는 담임선생님 말고 보조선생님이 있어요. 하루 종일 우리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홈페이지에 올리는 등 담임선생님하고 번갈아 반 아이들을 챙깁니다. 주로 젊은 20대 선생님들이라 학생들과 마음이 잘 맞아요.”

-수업은 재미있나.

 “그럼요. 예컨대 수학은 그냥 문제만 푸는 게 아니라 체험 형식을 통해 도형이나 원 그래프를 이해하기도 해요. 음악실은 경치가 좋아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요. 6학년은 태블릿 PC 수업을 합니다. 주로 사회 과목에서 활용을 하는데, 교과서에 나온 역사적 상황이나 사회 현상에 대해 태블릿 PC로 자료를 찾아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요.”

-수준별 수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나.

 “아니요. 그냥 수업하는 교실이 서로 다르다는 점 빼고는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주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신기하긴 하죠. 하지만 실력과 무관하게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기 때문에 주눅 들지 않아요. 쉬는 시간이면 원어민 선생님 교실이 정말 인기가 많아요. 놀러 가면 늘 반갑게 맞아주고 발음과 문법을 그때그때 웃으면서 고쳐주세요. 이렇게 수다 떨며 재밌게 영어를 배우기 때문에 만약 영어를 전혀 못하는 친구가 입학해도 금세 영어로 대화할 수 있게 될걸요.”

글=안혜리 기자
취재=김소엽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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