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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찾는 「뉴스」의 발|배달하는 지국장 김진용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50년래의 폭설이 길을 막았다. 밤사이 내린 눈은 앞뒷집 안부조차 끊어 버렸다.「라디오」 1대 없는 가난한 마을이어서 산 넘어 마을형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하늘만 빤한 강원도벽촌. 촌로들이 둘러앉아 폭설피해를 걱정하고있던 사랑방에 난데없이 신문이 날아들었다.
『이수근이 위장 간첩이었다』는 대문짝만한 활자에 촌로들의 눈은 휘둥그래졌다. 이웃끼리의 연락조차 끊어진 산간벽촌에 이수근이 잡혔다는 바로 그날 이 놀라운 「뉴스」를 마을사람들이 모두 알게 된 것이다. 이수근의 반공강연까지 직접 들었던 이 마을 사람들이기에 신문이 고맙다는 것을 느끼기보다는,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 놀라운 사실이 있은 뒤 마을사람들은 여느때보다 더욱 신문을 기다렸다.
삼척서 이 마을까지는 줄잡아 50리. 찻길이 막힌지 오래여서 걷는 수밖에 없었다. 걸어서 10시간은 걸리는 거리인데 그러나 신문은 꼬박꼬박 배달되었다.
문명과 등진 이 산골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깥소식을 실어다준 이 고마운「매신저」는 신문1백부를 보급하고있는 중앙일보근덕지국장 김진용씨(38).

<허리 넘어 눈헤쳐 삼척까지 6시간>
50년래 처음이라는 폭설이 처음 내리기 시작한 지난1월28일-밤사이 눈은 어른들의 허리 깊이만큼 쌓였었다.
하룻밤새 삼척일대의 모든 교통이 마비되자 차편으로 배달되던 신문도 독자들의 손까지 전해질 수 없었다.
유일한「뉴스」원까지 끊긴 독자들을 안타까이 여긴 김씨는 이튿날새벽 40리나 떨어진 삼척읍내까지 신문을 가지러 다른 지국장 몰래 혼자 나섰다.
한손으로 허리까지 차는 눈을 헤치고 삼척까지 가는데 무려 6시간.
정오쯤 삼척에 도착한 김씨는 삼척지국에서 신문1백부를 인수, 새끼로 동여매어 어깨에 지고 눈길을 되들아 가야 했다.

<이웃은 부인손에 먼길보행 한달간>
어둠이 깃들인뒤에야 근덕지국까지 돌아온 김씨는 언 손발을 녹일 겨를도 없이 다시 30리나 떨어진 궁촌마을까지 손수 배달길에 나섰다. 이때 김씨는 가까운 곳의 배달은 부인 김귀녀씨(39) 에게 맡기고 해발7백미터가 넘는 사래재를 넘어 애독자집을 밤새워 뒤졌다. 눈보라에 신문이 젖을까봐 「비닐」로 신문 뭉치를 싸서 등에 메고 재너머를 다니기 꼬박 한달. 그동안 김씨는 눈에 갇혀 궁촌리 애독자집에서 자고 온 날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金씨의 정성스런 배달행각의 화제 벽의 여러마을에 퍼지자 그동안 아래위마을서 중앙일보독자가 30여명이나 늘었다.
보통 한두달 밀리는게 예사였던 수금성적도 좋아져 최근 몇 달 동안은 1백% 수금실적을 올리게 됐다고 기뻐했다.
김씨는 중학교때 삼척까지 6년간 걸어서 통학한 경험이 있어 처음은 통학때기분으로 쉽게 나섰으나 역시 나이탓인지 너무나 힘들어 몇 번이나 단념할뻔도했었다고.
갯마을과 화전마을을 합쳐 약80가구가 사는 이 마을 사람들은 몇척 안되는 범선으로의 고기잡이와 부녀자들의 해초따기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이 일이 있은 뒤로 신문보는 집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동민들 표창상신 자전거1대 ??
지난3월초 이 마을 신윤구씨 (34·궁촌리) 등 10여명이 중앙일보사장 앞으로 김씨의 표창을 상신, 본사에서도 신문의 날을 맞아 애독자의 뜻을 받아들여 김씨에게 표창장과 부상으로 금일봉을 주었다.
그러나 김씨는『할 일을 한 것뿐인데』라고 겸손해하며 이를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 자전거 1대를 마련, 더 빠른 「서비스」를 하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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