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컨트롤타워 없는 ICT 정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

대한민국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의 제자리 찾기가 여전히 진통 중이다. 지난 정부의 정보통신부 폐지 이후 ICT 정책은 컨트롤타워 없이 사분오열돼 각개전투로 진행되면서 ICT 생태계는 위축돼 왔고 국가기술경쟁력은 뒤처졌다. 현 정부의 ‘창조경제론’은 정보통신 강국으로의 복권과 재도약을 위한 그림으로 많은 사람의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올해 초 정부조직법 처리 과정에서 ICT 정책 기능이 미래창조과학부·방송통신위원회·산업통상자원부 등으로 이름만 바뀐 채 다시 갈라지면서 과거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그 보완책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ICT 특별법이라 불리는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에 관한 특별법안’을 6월 국회에서 통과시키자는 여야 간 합의였다. 이 법안은 ICT 업무와 기능은 각 부처로 분산하되 국가 ICT 정책을 생산하고 부처 간 ICT업무를 조정하는 컨트롤센터로 국무총리실 산하에 정보통신전략위원회를 두고, 각 부처 정보화 예산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통합 관리하는 정보화예산협의회를 설치하는 것이 골자다. ICT 거버넌스 확립과 생태계 복원을 통해 효과적인 ICT 정책 조율과 자원 분배로 ICT 산업의 국가경쟁력을 확보해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ICT 특별법의 이번 국회 통과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법안이 시급하게 처리될 필요가 없다거나 완벽한 법률을 만들 때까지 법안 통과를 유보하자는 것은 ICT의 특성을 간과한 것이다. ICT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하루에도 수많은 기업이 생기고 사라지는 전쟁터다.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 누가 먼저 기술을 선점했느냐에 따라 경쟁력 차이가 천양지차다. 또한 이 법안은 일부 부족한 부분이 있음에도 국내 기업 역차별 방지, 대·중소기업 상생 및 약자 보호, 비합리적 규제 철폐 등 ICT 생태계 복원을 위해 신속히 처리해야 할 내용들을 담고 있다. 따라서 ICT 시장의 무한경쟁에서 더 뒤처지거나 ICT 생태계가 복원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되기 전에 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경험상 우리의 법은 신속하게 등장하고 끊임없이 변해 가는 ICT와 창조, 혁신을 담기에는 불완전한 그릇이다. 법은 ICT 신기술 등장 뒤 한참 후에 뒤따르고, 변화를 적시에 반영하지 못해 구닥다리가 되기를 반복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흠결 없는 완벽한 ICT 법안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오히려 완벽한 법을 만들려고 시간을 끌다 시기를 놓쳐 경쟁에 뒤처지기 일쑤다. ICT 관련법에서 시행착오 및 지속적인 개선의 과정은 필수다. 따라서 ICT특별법과 같은 신기술 관련 입법에서는 특별히 입법자들의 전향적인 자세와 신속한 제·개정 프로세스가 요구된다.

 더 중요한 것은 완벽한 ICT 특별법을 만든다 해도 우리가 변하지 않는 한 무용지물일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부처 이기주의 관행이 유지되는 한 실질적인 부처 간 업무조정과 창조적 융합은 결코 달성할 수 없다. 지금은 완벽한 법 제정을 위한 법안 변화가 아니라 ICT 융합의 속성과 창조경제의 의미에 맞춰 모든 주체가 관성에 굴복하지 않고 우리의 체질·사고·관행을 먼저 바꿀 때다.

 ICT 특별법은 특정 부처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창조경제를 실현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보장해줄 중요한 법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창조경제의 개념이 무엇인가라는 추상적 논쟁과 명분 싸움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다. ICT 특별법을 통해 우리 스스로 창조경제의 실질적인 모범 사례를 창출해 이를 통해 국민에게 새로운 기회와 일자리, 그리고 희망을 주는 것이다. 그 의미 있는 출발점이 ICT 특별법의 신속한 통과가 돼야 한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