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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새 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61년에 자살한 미국의 「노벨」상수상작가 「어네스트·헤밍웨이」의 전기가 「프린스턴」대학에 적을둔 전기작가 「칼로스·베이커」씨에의해 쓰여져 오는4월 「스크리브너」사에 의해 출간된다.
20세기 미국작가중 가장 행동적이었던 「헤밍웨이」의 전기는이것이두번째가된다.
첫번째것은 3년전 「헤밍웨이」생전에 그와 친분이 두텁던잡지기고가 「하치너」가 쓴것으로 제목은 『「헤밍웨이」할아버지』였다.
그러나 이책은 「사생활침해」를 이유로 미망인 「헤밍웨이」여사로부터 소송을 받았었다.

<소재는 37세때부터>
그러니 유가족의 승인하에 쓰여진 「헤밍웨이」의전기로는 이것이 첫번째가된다.
이전기는 「헤밍웨이」가 37세때부터 시작된다. 이때 그는 이미 『태양은 다시떠오른다』『무기여잘있거라』등 소설을내어 미국문단에서 최상급 작가로 인정되고 있었다.
1936년은 「스페인」에서 전쟁이 일어난해였다. 왕당파가 「마드리드」의한 공화군병영을 습격했다는 보도가있었을 때 「헤밍웨이」는 「스페인」친구 「프루덴시오·데·페레다」에게『이순간에우리모두가 「스페인」에 있었어야하는데!』라는 안타까운뜻을 편지로 전했었다.
이때 「헤밍웨이」의 편지함에는 얼마전에 출간된 그의작품 『「킬리만자로」의눈』에대한 독자들의 찬사에 가득찬 편지들이 매일같이날아들고있었다.
전쟁이 그의 양심을 충동질한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스페인」에 갈계획을 당시에 집필중이던 책을 끝낸다음으로 미루고있었다. 『책을 끝맺은 후에도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가지』라고 늘 중얼거렸었다.

<오래도록 살고싶어>
그에게 있어서 자기가 곧 죽음에 직면하리라는 직감은 마치 관절염의 증상처럼 주기적으로 그의 의식을 건드렸다. 그는 한때 미국의 여류단편작가 「마조리·홀링」여사에게 자기는흰수염을 기르고 담배를 씹을수있는 나이까지 살고싶기는 하지만 곧 죽을것같은 예감에 사로잡히곤한다고 고백했다. 이런 이야기를 한지 얼마되지않아 그는 또 미국시인 「맥리쉬」에게 보다 더 음울한 내용의 글을 보냈다. 이편지에서 그는 자기가 삶을 지독히 즐기기 때문에 만약 자신의 심장에 총부리를 겨누지 않을수없는 순간이 온다면 그건 불쾌하기 짝이 없을것이라고 썼다.
그 다음해 봄 그는 드디어 그시대 인간의 최대비극으로 상징되고있던 「스페인」으로 전쟁을 찾아 떠났다.
떠나면서 그가 장모에게 보낸 편지에는 전장속으로 뛰어들게된 동기는 어디까지나 「인도주의」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인도주의에 입각한」사회적 분계선이 어떻게 그어지고 있는지를 보기위해 떠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옹고집을 선전하기를 좋아했다. 『이런경우는 어떠시오?』라는말을 그러한때 곧잘 사용했는데 그 유래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44년 「유럽」전선에서 종군할때 그는 세사람의 독일군을 심문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굉장히 오만해서 「헤밍웨이」가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며 사살해 버리겠다고 위협하자 『당신은 겁장이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종에 속하며 더군다나 「제네바」협정이 엄연히 있기때문에 나를 못죽일것이오』라고 대들었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여보게, 그건 잘못 생각한거야』라면서 배에 세발, 머리에 한발을 쏴서 골이 코로 새어나왔다. 그걸 내려다보며 『이런경우는 어떠시오?』라고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48년가을 그는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서 자신이 과거에 다니던 활동무대를 두루 돌아보았다. 이 시기에 그는 마지막 작품 『강을 건너 숲속으로』를 집필하고 있었다. 그는 어행중 우연한 기회에 오리사냥 이야기를 써내려갔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는동안 상상력이 맹렬한 기세로 되살아나 이 「테마」를 장편으로 이끌어 갈 생각을하게되었던 것이다.

<노벨상에 구미당겨>
54년 가을 탈장수술을받고 병원에 입원해있던 그의 오랜친구 「버크·랜힘」장군에게 전화가걸려왔다.
장거리 전화를 통해 「헤밍웨이」는 대뜸 『그걸 타게됐다는 「뉴스」를 알려주려고 전화했네』라고 소리쳤다.
『그거라니 뭣 말인가?』『그 왜 「스웨덴」것 있잖아!』
『「노벨」상말인가?』
『맞았어. 자네한테 처음으로 알리는 거네』
『그거 잘 됐는데, 축하하네』
『오래전에 받았어야 했는데 거절해 버릴까 생각하네』
『바보같은 소리말고받게』
『그렇까. 사실 3만5천「달러」상금이 구미에 당기긴해』
「헤밍웨이」는 사실 상금은 받아썼지만 금「메달」은 「쿠바」 「샌티애고」성당에 있는 「쿠바」의 수호신 「고브레」의 성모에게 봉정했다.

<어틀랜틱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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