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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은사 변선생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유시유종과회자정리의천도를 어이 피할수야있으리요마는 슬프다, 일석선생의 가심이여! 민족은 이제 또 하나의 횟불을 잃었읍니다.
평생을두고 한결같이 사랑하시던 조국이 중흥의 발돋움을 하느라 안간힘 쓰는 이 시기에, 선생은 가셨읍니다. 고매한 인걸을 아쉬워함에 동서고금이 서로달랐으리까마는 안팎의 어려움을 생각할수록 흠모와 애통의 마음 더욱 더해옵니다.
지난1월 급환으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듣고 서둘러 귀국하여 뵈었을때에도, 10여일전 북아현동 자택에서 이미 식별을잃어버린 선생님의 눈을 마주했을때까지도 설마하는 마음으로 뒷날을 기다렸더니…설움이 이처럼 빨리 닥칠줄은 꿈에도 생각지못했읍니다.
후학의 앞길을 불기등처럼 비춰주시던 그꿋꿋한 삶의 자세도 중인의 때묻은 정신을 맑게씻어주시던 그 말씀도 이제는 차디찬 유택의 겹속에 시간을 이으십니까.
돌이켜보면 고난과 왜곡의 식민지교육하에서 직식할것만 같았던 중앙고보시절- 그때 처음뵈었던선생님은 명확한 판단과 힘찬 내일에의 신념으로 모든 제자들에게 생활에의 의욕과 활력을 주셨읍니다.
길러 뿌리셨던 수많은 밀알들이 상금 고개숙인 이삭으로 곳곳에 익어가는데 그흥겨로움을 채 보시지도 못하고 하마향연의 그늘에 잠기십니까.
학문에 임한 선생님의 경건한 자세는 선비의 정화로서 길이 본이되었고 이나라의 안보체제를 다듬으신 선생님의 혜안과 예지는 단국에 깊은 뿌리를 주셨읍니다.
한국이 미국의 방어선에서 제외되었다는 「애치슨」의 발표를 듣고 6·25를 예언하시던탁월한 통찰력과 「유엔」에서 북괴평화통일안의 거짓됨을 폭로하여 명연설로 찬양받으시던 그 가이없는큰 풍모! 이제 홀로 명명한 세계속으로 감추시러 하십니까.
선생념이주선하신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지금도 이나라 안전의 초석이며 「제네바」회의에서 「몰로토프」를 질타하셨던 패기는 이겨레의 잊을수 없는 긍지로 남았읍니다.
신앙으로 승화되었던선생님의 결백은 셋방살던 내각수반의 신화로서 이나라 사도에 영원한 빛으로 남을 것이며 정의의 구현을위해 의로울줄 아셨던 선생님의 자유혼은 언제까지나 사가의 벗이될것입니다.
그래서 더한 이 설움!
붓을 다해도 못다쓸선생님의공적은 오히려 아쉬움과 애통함을 새로이 할뿐입니다.
일찌기 위로 산강제, 아래로 수주와더블어 슬기와 애국과 결백의 3형제가 한시대의 정신을 이끌어 오더니 산강제의 해박한 학문과 수주의 재기를 잃은것만도 서러웠거든 이제 일석선생마저 유명을 달리하셨읍니다.
선샘님을 기리며 따르는 한잔술로 생전에 못다한 공경의 정을 대신케 하옵소서.
김용직<주유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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