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북한 사설

국정원의 '회의록 공개' 판단은 부적절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에 대해선 내용뿐 아니라 공개 절차도 따져봐야 할 사안이다.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실망을 안겨준 건 회의록의 내용만이 아니다. 전문(全文)을 전격 공개한 국가정보원의 판단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다.

 국정원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다른 시각도 있으니 법률 전문가들이 가리면 된다. 하지만 이번 일은 법률적 잣대로만 한정해 따질 게 아니다. 게다가 국정원이 지금까지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일만 해 온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무엇보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논란이 한창인 시점에 공개를 결정한 데 대해 의문이 나온다. 국정원은 부인하겠지만 이슈로 이슈를 덮으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이게 일반인들의 ‘합리적 의심’이다. 이미 야권은 국정원의 물타기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국정원은 또 회의록 내용이 상당 부분 언론에 공개돼 비밀문서로 유지해야 할 가치를 상실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당초 그 내용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것부터 국정원의 책임 아닌가. 지난 정부 때의 일이긴 하지만 자신에게 귀책 사유가 있는데도 마치 제3자처럼 설명하니 누가 납득하겠나.

 그 같은 국정원의 태도는 장차 우리의 외교에도 적잖은 부담을 줄 위험이 있다. 앞으로도 정상회담 때의 대화 내용이 일부 노출될 때마다 계속 기밀을 해제해 공개하겠다는 건가. 그럼 도대체 어느 나라 정상이 우리 대통령과 속 깊은 얘기를 하려 하겠나.

 정치적 파장도 심각하다. 민주당은 국정원의 행동이 쿠데타라며 격앙하고 있다. 회의록의 충격적인 내용 탓에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민주당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국정원에 대한 공세의 강도를 높일 것이다. 그 정치적 파장을 국정원이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회의록을 공개했다면 미필적 고의인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결국 우리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었다. 그가 북한의 김정일과 만나 대통령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는 사실을 낱낱이 까발리는 것 자체가 누워 침 뱉기다. 그게 과연 국익인가. 그런 의미에서 어제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전문을 공개했다는 남재준 원장의 발언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 국정원장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자기 조직의 명예가 아니다. 국가의 이익과 명예가 우선이다. 민주당은 남 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가뜩이나 팽팽한 국회의 대치 상황에 그의 거취 문제로 갈등의 불은 더 커진 셈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정원 개혁은 미룰 수 없는 국정과제로 떠올랐다. 흔히 국정원이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실제론 정치바람을 타려는 일부 인사가 문제다. 국정원의 수많은 직원들은 지금도 음지에서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보신과 출세에 눈이 어두운 소수 탓에 국정원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이다. 우리의 안보 여건에서 국가정보기관 본연의 기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를 수행하기 위한 능력과 전문성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 그런 방향의 국정원 개혁이 시급하다.

관련기사
▶ 2007년 완성된 정상회담 회의록, 표지록엔 '2008년 생산'
▶ [사설] NLL은 실질적인 영해선이다
▶ [103쪽 전문]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 1
▶ [103쪽 전문]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 2
▶ [103쪽 전문]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 3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