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환자들이 상식 깨고 격렬한 운동 … 10년 넘도록 합병증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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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노보 노디스크 선수들이 ‘2013투르드코리아’에 출전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국민체육진흥공단]

당뇨병 환자가 철인 3종 경기를 하고 도보 사이클을 탄다? 가능한 일일까. 당뇨병 환자는 혈당이 널뛰는 격렬한 운동은 피해야 한다. 저혈당 쇼크 같은 응급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걷기·조깅·맨손체조 같이 가벼운 전신운동을 주로 한다.

이런 격렬한 스포츠에 참여하는 당뇨병 환자들이 있다. 당뇨병 환자로 꾸려진 ‘팀 노보 노디스크(Team Novo Nordisk)’ 소속 선수들이다. 프로 사이클·철인 3종 경기·육상 등 약 100여 명의 선수로 구성돼 있다. 최근 팀 노보 노디스크의 프로 사이클팀이 한국에 방문했다. 국내 최대 도로 사이클대회 ‘2013 투르드코리아’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당뇨병 환자로만 프로 사이클팀을 구성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팀 노보 노디스크가 처음이다.

이번 대회에는 도보 사이클 선수 7명이 참가했다. 대회 기간인 9일부터 16일까지 충남 천안을 시작으로 전북 무주→경북 구미→충북 충주→강원도 평창→경기도 하남까지 하루 평균 140㎞ 이상 페달을 밟는다. 이 기간 동안 달린 거리는 1000㎞가 넘는다. 건강한 사람도 소화하기 어려운 일정이다.

팀 노보 노디스크의 마틴 베레스추어(27·네덜란드) 선수는 “당뇨병 환자라서 ‘못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팀 노보 노디스크의 경기복에는 ‘당뇨병을 바꾸자(Changing Diabetes)’는 문구가 써 있다. 당뇨병을 이유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다.

파올로 카라반졸라(26·이탈리아) 선수는 “18살 때 소아 당뇨병으로 진단받았다”며 “처음엔 당뇨병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훈련을 받으면서 당뇨병이 내 삶이나 사이클 경기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스티븐 클랜시(20·아이랜드) 선수도 “평소 탄수화물을 얼마나 먹는지 확인하는 것을 제외하면 당뇨병 진단 이전과 이후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당뇨병으로 내 몸 상태에 대해 자세히 아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당뇨병 환자라는 사실이 불편할 수는 있어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린 셈이다. 팀 노보 노디스크 선수들은 ‘2013 투르드코리아’ 경기 역시 다른 선수와 동일한 조건으로 참가했다. 다만 손목에 시계처럼 생긴 혈당 측정 센서를 부착한 점만 다르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혈당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당뇨병 환자는 격렬하게 운동을 하면 혈액 속 포도당이 소모되면서 혈당이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다. 베레스추어 선수는 “항상 혈당 측정 센서를 보면서 현재의 몸 상태가 어떤지를 확인한다”며 “경기 중에 혈당이 떨어지면 당이 많이 포함된 에너지 바나 콜라를 마신다. 반대로 혈당이 높아지면 응급조치로 인슐린 주사를 투약한다”고 말했다.

이번 첫 도전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다. 꾸준한 운동은 혈당을 효과적으로 조절한다는 점도 알렸다. 당뇨병 환자 2명 중 1명은 진단 5년 이내에 크고 작은 합병증에 시달린다. 하지만 팀 노보 노디스크 소속 선수는 다르다. 이들은 당뇨병으로 진단받은 지 평균 10년이 넘었지만 모두 당뇨병 합병증이 없다.

대한당뇨병학회 김성래 홍보이사(가톨릭의대 부천성모병원 내과)는 “당뇨병 관리는 혈당과의 싸움”이라며 “팀 노보 노디스크의 경기는 ‘규칙적인 운동이 당뇨병 극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와 ‘당뇨병 환자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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